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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목줄 죄는 분야부터 개발” 10년전쟁 각오한 ‘자력갱생 中’

중앙일보

입력

[SCMP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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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에 제재의 칼날을 겨누는 건 끝날 기미가 없다. 15일엔 반도체 제재가 시작됐다. 화웨이는 내년 이후 회사의 존폐를 걱정한다. 틱톡은 미국 기업에 사업 매각을 타진 중이다. 중국의 대표 메신저 위챗과 텐센트도 제재 칼날에 숨죽이고 있다.

이대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은 이미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CRA)을 통해 총 14개 분야를 ‘신흥기술과 기초기반 기술’로 규정했다. 이 분야에선 중국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천명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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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소 거친 방법을 쓰더라도 어떻게든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겠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앞으로 더한 제재안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도 만만치 않다.

‘곧 죽어도 고(Go)’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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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자력갱생할 생각이다. 중국 기초과학 연구의 핵심기관 책임자가 최근에 한 말을 보면 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바이춘리(白春禮)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 원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국의 과학기술과 관련한 소신을 밝혔다.

바이춘리 원장.[사진 위키피디아]

바이춘리 원장.[사진 위키피디아]

그의 말은 이렇다.

"미국이 중국에 벌이는 기술봉쇄(통제) 리스트. 향후 10년간 중국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청사진으로 활용해야 한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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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미국의 기술 봉쇄 리스트는 우리에게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임무를 부여했다”며 “우리의 목표는 기술적으로 살해당하는 것을 피하는 데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풀어보면 이런 거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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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중국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핵심 기술에 강한 제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보자. 미국이 제재에 힘쓰는 분야만 제대로 개발하면 중국은 미국 의존을 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제재하는 분야부터 연구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곰곰이 들어보면 바이 원장의 발언은, 미국엔 이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미국, 얼마든지 제재해봐라. 어떻게 막아도 우린 굴복하지 않고 너희가 두려워하는 분야부터 기술 독립을 이룰 거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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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갱생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면서도 미국을 도발하는 말인 거다.

바이 원장의 말. 무게가 남다르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중국과학원의 존재감 때문이다. 이곳은 중국 내 모든 과학적 자원을 활용해 미국과의 기술전쟁에서 최일선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9년 설립돼 5만 6000여 명의 연구인력을 거느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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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바이 원장 발언엔 시진핑 주석의 뜻이 있다. 지난 11일 시 주석의 발언을 보면 안다. 그는 이날 베이징에서 과학자 좌담회를 주재하며 “중국의 발전은 국내외 환경에 복잡한 변화가 발생하는 국면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가의 미래가 과학기술 혁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환경 변화를 언급한 뒤 과학기술 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어떻게든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백기 투항은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 거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바이 원장이 우선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보는 분야는 어디일까. 그는 “핵심 기술, 핵심 재료, 기술, 기초 알고리즘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이는 마스크 얼라이너(mask aligner), 항공기용 타이어, 최첨단 반도체 칩과 같은 분야”라고 말했다.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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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얼라이너는 반도체에 쓰인다. 반도체 집적 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도체 표면에 마스크 필름을 정확하게 자리하고 빛을 가해 회로를 구성하는 장치다. 바이 원장은 그러면서 “우리는 국가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초점을 맞춰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SCMP에 따르면 이는 반도체 칩, 소프트웨어, 전자기 기술, 최첨단 베어링강, 다언어 오디오 연구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이 5개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쉽진 않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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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당장 미국의 총칼에 힘을 못 쓴다. 화웨이 제재가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SMIC(중신궈지·中芯國際)가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는 화웨이에 못 판다”는 미국 제재를 철저히 준수한다는 입장까지 밝힐까. 자국 업체를 버리고 미국 눈치를 보는 것이다. 미국 심기를 건드려 제재나 맞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처지다.

[FT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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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국의 창에 중국의 방패가 얼마나 견딜지가 관건이다. 바이 원장의 청사진 발언이 실현 가능한 예언일지, 말만 앞선 만용이었는지도 그에 따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고사(枯死)작전 속에 중국은 얼마나 오래 굶주림과 갈등을 견뎌낼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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