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출신 회계사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의 통장에 매달 들어왔던 정부·지자체 지원금이 "지급되는 족족 누군가에 의해 '현금'으로 출금됐다"며 "4억원가량 인출됐다"고 21일 의혹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입수한 길 할머니의 계좌 명세 일부를 공개하며 "국민은행 계좌에서 108회에 걸쳐 1억1400만원이 출금됐다"며 길 할머니가 머물고 있던 마포 쉼터 인근인 '성산동 지점'에서 매번 출금이 이뤄졌다고 했다. 길 할머니는 정의연 사태 뒤 지난 6월 마포 쉼터를 떠나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또 "누가 빼갔을까요?"라며 "해당 은행 성산동 지점 가서 창구 직원에게 물어보면 금방 대답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08회 거래 중 세 번은 마포쉼터 관계자 통장으로 이체됐다며 "다른 계좌(농협)에선 2억9500만원이 비슷한 방식으로 출금됐다"고 했다.
길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서울시·마포구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주거비 등 명목의 350만원, 65세 이상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30만원이다. 이를 합치면 매달 380만원가량이 입금되는 것이다. 돈을 인출한 사람과 방법, 인출된 돈의 사용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길 할머니가 고령인 데다가 거동이 불편해 직접 인출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길 할머니는 2015년부터 치매 관련 신경과 약을 복용해왔고, 검찰도 길 할머니의 병력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6월 길 할머니의 아들 황모씨 부부는 지난 6월 검찰조사를 받은 뒤 "이전까지 매달 110만~120만원 정도 받으시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어머님께 매달 350만원씩의 지원금이 들어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이렇게 큰돈을 받는 줄 몰랐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길 할머니 통장에서 현금이 빠져나간 사실은 확인했지만, 입증이 쉽지 않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기소에선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정의연 전 이사장이었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준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마포쉼터 소장 C씨와 공모해 심신장애를 앓고 있는 길 할머니를 이용해, 할머니가 받은 상금 등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다.
윤 의원은 지난 14일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속였다는 주장은 해당 할머니의 정신적 육체적 주체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자를 또 욕보인 주장에 검찰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준사기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할머니의 평화인권운동가로서의 당당하고 멋진 삶이 검찰에 의해 부정당하는 것을 겪으며 제 벗들과 함께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 올린다" 길 할머니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