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를 두고 최근 베이징 외교가에서 도는 말이다. 실제 얼마나 많이 만나길래 이런 말이 나올까. 주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싱 대사 활동 중 양자 미팅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유상철의 차이나는 차이나] #개인능력과 국가의 무게 차이도 있지만 #서로 다른 체제가 주는 환경 차이 커 #한·중 대사 뛰는 운동장 평평치 않아
그는 1월 30일 부임해 8월 말까지 79명의 한국 주요 인사를 만났다. 한 주에 두세 명을 만난 셈이다. 정부와 정계 인사가 28명으로 가장 많았고, 재계와 언론사, 각종 단체, 지방 및 학계 인물 순으로 이어졌다.
질도 높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수성 전 총리, 문희상과 박병석 국회의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김명수 대법원장, 유은혜 교육부총리, 최태원 SK그룹 회장, 특히 언론사 대표 11명을 찾아 공공외교에 공을 들인 게 눈에 띄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게 있다. 장하성 주중 대사는 어떨까. 주중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싱 대사와 같은 기간을 살피니 단 한 건에 불과하다. 3월 30일 중국 외교부 뤄자오후이(羅照輝) 부부장을 만난 게 전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각 부처의 대외 활동이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아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장 대사가 부임한 지난해 4월 7일부터 8월 말까지를 봤다.
장 대사는 17개월 동안 중국 중앙 정부 9명, 지방 8명, 학계 2, 단체 한 명 등 20명의 주요 인사를 만났다. 한 달에 한두 명꼴이다. 지난해 9월 면담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시절 부총리 쩡페이옌(曾培炎)이 가장 고위직 인물로 보인다.
중국 언론사나 민간기업 대표와의 만남 기록이 하나도 없어 놀랍다. 장 대사는 지난해 부임해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났을 때 세 가지 일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남북 관계 개선 기여, 한·중 경제교류 촉진, 한·중 지방정부 간 교류 활성화 등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지방을 적지 않게 찾긴 했는데 여기서도 뒷맛이 씁쓸하다. 장 대사가 성장 이상 지방 지도자를 만난 곳은 헤이룽장(黑龍江), 네이멍구(內蒙古), 광시(廣西), 장쑤(江蘇)와 랴오닝(遼寧) 등이다.
중국 4대 직할시나 중국 경제를 이끄는 광둥(廣東)의 리더 등은 만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이른바 잘 나가는 중국 지방 정부의 콧대가 세져 그쪽 지도자를 만나기가 무척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중국의 구석진 곳을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일주일에 두세 명의 한국 요인을 만나는 싱하이밍 대사에 비해 왜 장 대사는 한 달에 한두명의 중국 인사도 만나기 어려운 걸까.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 차이다. 싱 대사는 1992년 한·중 수교 회담부터 중국 외교부 실무자로 참여한 한반도 전문가다. 북한에서 대학을 나오고 남북한 중국대사관 모두에서 근무하는 등 한반도 업무만 거의 30년 동안 해왔다.
반면 장 대사는 경제학자 출신으로 중국 경험은 푸단(復旦)대 방문학자 정도다. 주재국 이해와 경험, 인맥 등에서 프로와 아마 차이다.
두 번째는 국가 차이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이후 중국대사의 만남 요청을 뿌리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의 덩치가 커지는 것과 반비례해 중국 내 한국의 크기는 날로 작아지는 모습이다. 그만큼 한국대사의 무게 또한 가벼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세 번째인 환경 차이로 보인다.
한·중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가 부여하는 환경의 차이다. 싱하이밍 대사가 비교적 자유롭게 한국 각계 인사와 접촉할 수 있다면 장하성 대사는 중국의 경직된 관료 시스템 아래에서 제한적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부패 척결 바람과 함께 관료 집단은 물론 사회의 거의 전 분야가 얼어붙었다. 외국 고위 관계자와의 사적인 만남이란 생각하기 힘들다. 꼭 처리해야 할 업무가 아니고서는 만나지 않는다.
편한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며 친분을 쌓을 기회가 사실상 원천 봉쇄된다.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강화된 현상이기도 하다. 사회를 감시하는 당의 눈길에 빈틈이 없다 보니 외국인은 안 만나는 게 상책인 상황이 됐다.
대사 개인이나 국력의 차이보다 한·중 체제가 부여하는 환경 차이가 외교력 차이를 빚어내는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이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말과도 같다. 싱 대사가 뛰는 한국과 장 대사가 달리는 중국이란 운동장은 평평하지가 않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이런 프리미엄을 많이 누렸다. 자유 세계에 진출해 그 세계의 자유를 호흡하며 마음껏 발전을 추구했지만, 중국 내부는 ‘중국 특색’이라는 편리한 잣대를 내세워 막는 게 많았다.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톡과 중국의 위챗이 좋은 예다. 위챗은 한국과 중국에서 다 잘 터진다. 그러나 카톡은 중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먹통이 되기 일쑤다. 자연히 카톡 대신 위챗을 쓰게 된다. 중국은 그렇게 발전한다. 한·중 외교력도 그렇게 차이가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