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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명량해전 승리한 이순신에게 한 아이가 건넨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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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병욱의 우리 식재료 이야기(8)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추석에는 풍성하고, 많은 양의 오곡백과로 음식을 장만해 누구나 다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추석에는 풍성하고, 많은 양의 오곡백과로 음식을 장만해 누구나 다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우리 속담 중에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풀어보면 매일매일이 한가위, 즉 추석과 같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추석에는 풍성하고, 많은 양의 오곡백과로 음식을 장만해 누구나 다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항상 명절을 시골에서 보내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먹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란국이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장국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항상 토란국을 따로 만들어 작은 그릇에 담아 손자들 앞에 내놓았다. 그 시절에는 그냥 주는 대로 맛있다고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하다 보니 할머니는 왜 토란국을 따로 준비해 주셨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흙 속의 알이란 뜻의 토란은 연잎처럼 잎이 퍼졌다고 해 토련이라고도 불리는 버릴 것 없는 채소다. 알뿌리 채소이자 잎줄기 채소이며, 감자처럼 뿌리가 따로 있다. 원산지는 인도 동부와 동남아의 열대, 아열대 지역으로 고려 시대 이전에 한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남 곡성이 최대 토란 생산지 

곡성은 밤과 낮의 온도 차가 크기 때문에 땅속에 있는 토란이 밤에 많은 양의 양분을 많이 저장할 수 있어 다른 지역의 토란보다 단단하고 맛있다고 한다. [사진 강병욱]

곡성은 밤과 낮의 온도 차가 크기 때문에 땅속에 있는 토란이 밤에 많은 양의 양분을 많이 저장할 수 있어 다른 지역의 토란보다 단단하고 맛있다고 한다. [사진 강병욱]

국내에서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생산되는데, 전남 곡성이 토란 전체 생산량의 60~70%를 생산하는 최대 생산지이다. 곡성은 밤과 낮의 온도 차가 크기 때문에 땅속에 있는 토란이 밤에 많은 양의 양분을 많이 저장할 수 있어 다른 지역의 토란보다 단단하고 맛있다고 한다.

그럼 토란을 섭취할 때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토란의 주성분은 당질과 단백질이며 칼륨도 풍부하다. 다른 감자류에 비해 칼로리가 낮은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변비와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섬유질도 상당히 풍부한 편이다. 토란을 손질하다 보면 미끌미끌한 점액 성분이 나오는데, 이것을 갈락탄이라고 한다. 갈락탄은 당질로, 소화는 잘 안 되지만 해독 작용을 하고 간 기능을 높이며, 궤양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토란 전분은 입자가 작아 가루로 만들어 섭취하면 소화가 잘되고, 변비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토란을 생으로 먹으면 중독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뿌리를 많이 식용하지만 줄기도 스트레스 해소와 야뇨증, 알레르기성 비염, 잠잘 때 식은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에 효과가 있다. 단 토란대와 토란에는 수산 석회가 들어 있어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토란을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토란은 주로 추석 무렵에 많이 나는데, 잎과 줄기는 말려 나물을 해 먹고 알뿌리는 장아찌, 찜, 조림, 탕으로 조리해 먹는다. 추석 명절이면 토란을 수확해 쇠고기에 무와 토란을 넣어 토란국을 해 먹었다. 서울에서는 맑은장국으로 많이 해 먹었으며, 남도 지방에서는 들깨를 넣어 고소하게 끓여 먹었다. 명절 때엔 먹을 것이 풍족해 과식하기 쉽고, 명절 음식 대부분이 고단백, 고지방, 고열량식이라 배탈이 나기 쉽다. 소화를 돕고 변비 치료와 식중독을 예방하는 완화제인 토란을 먹어 속을 편하게 해 주려던 조상의 지혜가 여기서도 엿보이다. 예전 할머니께서 왜 손자들에게 토란국을 따로 만들어 주셨는지 할머니의 손자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토란은 잎과 줄기는 말려 나물을 해 먹고 알뿌리는 장아찌, 찜, 조림, 탕으로 조리해 먹는다. 한방에서는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하는 음식으로 '토란국'을 추천하고 있다. [사진 강병욱]

토란은 잎과 줄기는 말려 나물을 해 먹고 알뿌리는 장아찌, 찜, 조림, 탕으로 조리해 먹는다. 한방에서는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하는 음식으로 '토란국'을 추천하고 있다. [사진 강병욱]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토란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곁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란의 기록이 나와 있는 최초의 기록은 고려 시대 약제 자급을 위해 편찬한 『한약 구급방』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약재로는 ‘우’ 또는 ‘토지’로 언급되는데, 한방에서는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하는 음식으로 토란국을 추천하고 있다.

또한 구황 작물로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산림경제』에 나와 있다. 각조산의 어느 사찰의 스님이 해마다 토란을 심어 절구공이로 찧어 벽돌처럼 담을 쌓아 두었는데, 몇 년 뒤 흉년이 들자 토란으로 40 명이나 되는 스님을 굶주림에서 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건강식에도 토란죽이 있다. 영화 ‘명량’에서도 토란의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치열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시고 잠시 쉬고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한 아이가 음식을 건네는데 그것이 토란이다. 이에 ‘먹을 수 있어서 좋구나’라는 말을 한다. 토란은 구황 작물로도 우리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된다.

옛 생각을 떠올리면 토란국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토란의 껍질을 벗겨주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토란은 아린 성분이 있어 맨손으로 하면 손이 간지럽기 때문에 껍질을 벗길 때는 꼭 장갑을 끼고 벗겨주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긴 토란을 먹기 좋게 잘라준 뒤, 쌀뜨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토란을 넣어 5분 정도 삶아준다. 다른 냄비에 무, 고기, 다시마 등을 넣고 끓여주다 토란과 각종 양념을 넣어 주면 토란국이 완성된다.

몇 가지 팁이 있다면 토란국을 만들 때 다시마는 반드시 넣어주는 것이 좋다. 다시마가 토란의 떫은 맛을 제거하고 시원한 맛을 더해 준다. 또한 참기름을 마지막에 살짝 뿌려주면 토란의 아린 맛을 없애주기 때문에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맛이 난다. 예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토란국을 100% 재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르며 더 소중하고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식재료나 모두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토란만큼은 어린 시절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할머니가 입에 한입씩 넣어주시던 그 토란국이 요리사가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유난히 할머니의 음식이 생각이 나는 곡성의 토란 이야기다.

넘은봄 셰프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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