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강병욱의 우리 식재료 이야기(5)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감태를 처음 만난 날을. 모양은 김과 비슷하지만, 초록의 빛이 나는 색이 아름답기도 하였고, 묘하게 식감을 자극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마치 방과 후 문방구에서 사 먹는 아이스크림과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감태의 맛은 종종 저녁 반찬으로 올라와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되새겨 주었다.
감태는 ‘달 감(甘)+이끼 태(苔)’의 합성어로 단 이끼, 달달한 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명은 가시파래로, 해조류의 일종으로 분류하며 색과 모양이 매생이와 파래를 닮았지만 감태 특유의 맛과 식감이 있다.
감태는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로 여겨지며 왕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단골 식재료였다. 조선 시대 명나라 사신을 대접할 때 감태를 사용했으며,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환갑잔치 때 올라올 만큼 아주 귀한 식재료였다.
정약전이 1814년 발간 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서인 『자산어보』에도 감태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모양은 매산태(매생이)를 닮았으나 다소 거친 느낌이며 길이는 수 자 정도이고 맛이 매우 달다. 갯벌에서 초겨울에 나기 시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글로 유추해 볼 때 감태는 겨울에 생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감태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수확할 경우 색이 노란색으로 변질이 되어 먹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감태의 주요 생산지는 서해안의 서산 등 일부 청정갯벌 지역이다. 해조류의 종류인 감태는 실제로 다른 해조류보다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이다. 그 이유는 생산지나 생산 시기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염된 갯벌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더욱 희소성이 있다. 날씨와 온도에도 굉장히 예민하며, 한 번 채취한 곳에서는 그다음 해 채취가 불가능하고 다른 곳에서 자라는 매우 까다로운 녀석이다.
그럼 감태의 생산 과정은 어떻게 될까? 첫 번째로는 감태가 나오는 갯벌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서 감태의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서 손으로 뜯는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팁이 있는데, 바닥을 긁지 않고 손에 감태가 들리는 만큼 그리고 돌돌 감는 형식으로 감태를 채취하면 어렵지 않게 채취가 가능하다.
채취가 끝난 감태는 바닷물을 제거해주는 세척 작업이 필요하다. 바닷물로 뻘을 제거해 준 다음 깨끗한 물로 4~5회 정도 씻어 염분을 씻어준다. 염분이 제거된 감태를 틀에 넣어 고르게 펴주는 작업을 진행해준다. 물속에 넣어 충분히 흔들어야 틀에 맞게 고르게 펴진다. 이 과정을 ‘써레질’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틀에 넣은 감태를 해가 잘 드는 곳에 두고 햇볕과 해풍으로 잘 말린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치면 우리 식탁으로 올라오는 감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감태의 주요 성분과 효능에 대해서 알아보자. 감태의 주요성분에는 노화 억제 효과와 항산화 효과, 항암 및 항염 효과가 입증된 후코이단과 체내 수면물질을 활성화해 인체 스스로 수면을 유도해주는 플로로타닌, 몸속에 있는 활성산소를 비롯한 각종 산화 대사산물을 해가 없는 물질로 전환 시켜주는 황산화 물질인 폴리페놀 등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다.
또한 요오드와 칼륨 및 알긴산 나트륨, 칼슘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감태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다른 해초류 보다 고칼슘이라는 것이다. 우유의 5배에 달하는 칼슘이 들어있기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와 골다공증의 치료 및 예방의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감태에는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을 묽게 하고 숙변을 제거해 주는 효과가 있어 변비 예방과 다이어트에 큰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감태의 비타민 A 성분은 체내에 쌓여있는 니코틴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좋은 것만 있을 것 같은 감태도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감태는 기본적으로 차가운 기질을 띄는 갈조류이다. 감태의 일정량 섭취는 도움이 되나 평소에 몸이 차갑거나 수족냉증과 같이 손발이 차가운 사람이 과량섭취 시 피부색이 창백해지거나 염증 및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다의 비린 맛이 전혀 없고 감칠맛이 나는 감태를 가지고 많은 식재료와 결합하여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주로 김과 같이 갓 지은 밥에 싸 먹기도 하며, 구운 감태를 잘게 부순 다음 밥을 한입 크기로 둥글둥글하게 만들어, 부순 감태를 묻혀주어 감태 주먹밥으로 먹기도 한다.
좀 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어 고민에 빠진 도중, 얼마 전 산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감자를 활용한 ‘감태 매쉬 포테이토’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감자의 껍질을 벗겨 삶기 좋게 4등분을 한 뒤, 냄비에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아준다. 부드러워진 감자를 꺼내어 살짝 식혀준다.
감자가 식을 동안 감태를 살짝 구워주어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살짝 구워진 감태를 믹서기에 넣어 곱게 갈아준다. 감태를 살짝 구워주지 않고 믹서기에 갈면 입자가 너무 작아져 그 향을 느끼기 어렵다. 식힌 감자와 갈아준 감태를 합쳐 포크 등을 이용해 으깨어 주면 감태 향이 솔솔 나는 ‘감태 매쉬 포테이토’가 완성된다.
초록 향이 은은히 나는 모습이 마치 나물 무침을 보는 것 같았다. 감자와 잘 어울리는 닭고기를 준비해 팬에 구운 뒤, 버섯과 각종 허브를 곁드니 그 맛이 흡사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감태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 식재료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점점 오염되어 가는 바다와 고령화해가는 인력 때문에 그 양이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살을 에는 겨울 바다 추위에 허리도 다 펴지지 않는 할머니가 맨손으로 건져 올린 감태가 얼마나 많은 고생과 정성을 거쳐 우리 앞으로 오는 건지 다시 한번 큰 존경과 감사함이 느껴지는 하루다.
리치테이블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