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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 코로나로 욕보제, 추석엔 가마이 너거 집에서 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에미야. 올 추석에는 코로나 때민에 저거하고. 너거 집에서 쉬래이”

경북 의성 할매·할배들 영상편지 #“너거만 잘 있으믄 된다, 걱정 마라” #독거 어르신 찍어 자녀들에 전송 #일부는 촬영 뒤 “그래도 올끼라”

“○○야. 올해(추석)는 너거꺼정(너희들끼리) 쉬라. 꼼짝 말고 가마이 들어앉았고. 코로나 숙지거든 온나.”

“○○야, ○○야 너들도 아~들 때무로(때문에) 욕본다. 아~들 학교도 못가고. 내 걱정은 마라. 내는 잘 있다. 모두 잘 지내거래이”

“며늘아, 사람 마이(많이) 댕길 때 추석이라고 오지 말고 추석 쉬고 나거든 사람 적게 다니고 조용할 때, 내려오고 싶거든 내려온나. 며느라 사랑한다.”

추석을 앞두고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낼 안부영상을 촬영 중인 어르신들. [사진 의성군]

추석을 앞두고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낼 안부영상을 촬영 중인 어르신들. [사진 의성군]

자녀들과 떨어져 시골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편지’를 제작해 보내고 있다. 수도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이번 추석엔 귀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담아서다. 방역 당국도 추석 연휴 기간 시민들의 대규모 이동과 가족간 밀접 접촉을 통한 감염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시골의 부모님들 대부분이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층이란 점도 한 이유다.

지난 14일부터 영상편지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보내는 곳은 전체 거주 인구(5만1940명)의 40%가 65세 이상 노인인 경북 의성군이다. 의성군 생활지원사 120명이 ‘할매·할배’집을 각각 찾아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자녀들에게 바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미리 준비한 원고나 리허설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진한 경상도 시골 사투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장소도 안방, 툇마루 등 다양하다. 동영상 촬영이 어색한 게 역력하다. 눈을 감고 말하는 어르신도, 바닥만 보고 얘기하는 어르신도 있다. “여기는 걱정 마라. 군에서 밤마다 전화해준다” “너거만 잘 있으믄 된다” 추석에 못 오는 자녀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려 하는 말들이 애틋하다.

촬영 대상은 의성군에 혼자 사는 1873명의 어르신들. 의성군은 오는 26일까지 모든 촬영과 영상편지 전송을 마칠 방침이다.

영상편지 제작 아이디어를 낸 박경숙 의성군 노인복지계장은 “어르신들은 영상편지론 ‘너거꺼정 쉬어라’ ‘올해는 오저 마라’ ‘난중에 조용하면 온니라’라고 하면서도, 일부 어르신은 촬영이 끝난 뒤엔 ‘그래도 올끼라’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노인 인구가 많은 시골 지자체에서 영상편지를 제작한 것은 의성군이 첫 사례라고 한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이동을 자제하고, 가급적 집에 머무르며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면서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안부 전화를 확대하는 등 노인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16일 기준 의성군의 누적 코로나19 확진자는 44명이다.

의성=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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