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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신비에 발목 잡혀 자영업자의 절박함 외면할 텐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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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처럼 통신비 2만원이 자영업자·소상공인 긴급 지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야는 일단 ‘4차 추경안 22일 처리’에 합의했지만 통신비 논란이 커지고 있어 합의가 지켜질지는 불투명하다.

뜬금없는 선심성 지원이 4차 추경 걸림돌 #논란 접고 추석 전 취약계층 지원 집중해야

이는 정책 책임자들이 정치적 꼼수를 쓰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고 일을 추진했으면 겪지 않았을 혼란이다. 이번 추경은 애초 긴급재난지원의 취지에 맞게 코로나19 피해가 큰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선별 지원하자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더구나 지금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선심성 예산을 쓸 처지가 못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며 “피해 맞춤형 재난 지원은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도 이런 현실 인식에 따라 영업제한 장기화로 절박한 처지에 빠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내용의 4차 추경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속하게 집행에 나서 추석 전에 자금을 지원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제가 꼬인 것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 지원을 제안하면서다. 다분히 지지율을 의식한 정치적 행보였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달랐다. 여론조사에서 통신비 지원에 대해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58.2%, ‘잘한 일’이란 응답은 37.8%로 나타났다. 통신비 지급을 결정하면서 문 대통령이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밝혔지만 4차 추경 7조8000억원을 고스란히 빚으로 마련한 것을 잘 아는 국민은 이런 식의 포퓰리즘 행정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 책임자들은 이런 여론에 귀를 닫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4인 가족 기준 8만원의 통신비 절감액이 무의미하다고 얘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취약계층에 집중해야 할 긴급 지원을 13세 이상에게 무차별로 뿌리면서 이렇게 둘러대는 것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예산 규모가 무려 9300억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조차 “통신사에 가입한 사람은 혜택을 보고, 아니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잘못 끼운 단추는 고쳐 끼우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그대로 밀어붙이면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취약계층의 절망을 더 깊게 할 뿐이다. 지금 금융권에서 대출 만기를 연장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만큼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사정이 절박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원이 넉넉하지 않은 만큼 4차 추경은 취약계층을 돕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추석 전에 긴급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은 통신비 논란을 수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