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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불면증·ADHD, 앱·VR로 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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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한 모바일 게임을 ‘치료제’로 승인해 화제가 됐다. 이 게임은 미국 아킬리 인터랙티브랩이 만든 ‘인데버RX’다. 공중에 뜨는 하버보드를 타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인데, 엄연한 ‘디지털치료제’다. 게임을 하면 특정 신경회로가 자극되면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치료된다.

‘제3 신약’ 디지털치료제 급성장 #약물 대신 스마트폰·SW로 치료 #3년 전 약물중독 환자용 첫 승인 #국내선 시야장애 VR치료기 임상 #“비대면 시대 최고 유망” 투자 몰려

‘머리로 먹는 약’ ‘제3의 신약’으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이하 DT)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아도 소프트웨어나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신개념 치료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가상현실(VR)·인공지능(AI) 기술 등이 활용된다. DT는 기존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임상을 거쳐 의료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의사의 처방도 필요하다.

디지털치료제 사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디지털치료제 사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임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기술예측센터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DT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비대면이 일상화 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기술로 꼽힌다”고 말했다.

DT가 처음 등장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미국 페어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리셋((reSET)’이다. 리셋은 약물중독 환자의 인지행동치료(CBT)를 돕는 스마트폰 앱이다. 2017년 9월 DT로는 처음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DT는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물론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금연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 중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치료하는 디지털 앱 ‘프리스피라’,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솜리스트(Somryst)’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오츠카제약이 개발한 항정신성 약물인 ‘아피졸’에 전자 센서를 삽입해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아빌리파이마이사이트’도 이름이 났다.

시장조사업체인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전 세계 DT 시장은 올해 17억 달러(약 2조원)에서 2023년 44억 달러(약 5조2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2026년 DT 시장이 96억 달러(약 11조3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 전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 전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형 제약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지난 11일 베링거인겔하임은 미국의 클릭테라퓨틱스와 5억 달러(약 5900억원) 규모의 DT 공동개발 계약을 했다. 클릭테라퓨틱스는 환자의 인지·행동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다. 또한 영국 글락소스미스는 2016년 DT 개발을 위해 ‘갈바니’를 설립했고, 스위스 노바티스는 미국의 피어테라퓨틱스와 손잡고 조현병 DT를 개발 중이다.

돈도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인 피치북은 최근 보고서에서 DT 분야에 투자된 자금은 2015년 1억3400만(약 1580억원) 달러에서 지난해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국내 시장에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제품은 없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 하반기엔 첫 DT가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발 빠른 것은 뉴냅스다. 이 회사가 개발한 ‘뉴냅비전’은 지난 7월 식약처의 임상 승인을 받았다. 뉴냅비전은 VR 기술로 시각신경을 자극해 뇌손상 후 시야장애(시각중추가 손상돼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를 치료하는 의료기기다. 이 밖에 라이프시맨틱스는 앱과 건강 측정기를 연동해 호흡기 환자의 재활을 돕는 DT ‘에필브레스’를 개발 중이다.

박지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의료기기PD는 “DT는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지만 각국의 규제개선과 정책 지원으로 연평균 20~30%의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하태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DT가 3세대 치료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가 DT의 범위와 개념 등을 보다 면밀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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