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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권진규, 그리고 강요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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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요배, 노야, 2011. [학고재]

강요배, 노야, 2011. [학고재]

지난 7월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그림과 말 2020’ 전에서 본 그림의 여운이 지금까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은 ‘노야(老野)’. 말 그대로 ‘늙은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가로 1.95m, 세로 2.59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제주도에 사는 강요배(68) 작가가 늦가을 제주 오름의 벌판에 핀 물매화와 들꽃의 자줏빛을 담은 것입니다. 짙은 색의 풀과 흙이 거칠게 뒤엉킨 바탕 위에 꽃들이 별들처럼 촘촘히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심쿵’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그림이 그냥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그(강요배)의 그림이 품고 있는 진정한 매력은 점과 꽃과 별을 하나로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점 하나에 꽃과 별의 우주적 서사를 담아내는 사유의 힘”에 있다고 했습니다. 끄덕끄덕.

지난주에 ‘노야’ 강요배 작가를 만났습니다. 최근 산문집 『풍경의 깊이』(돌베개)를 냈는데요, 인터뷰 중 그가 자신을 감동하게 한 작가들을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인성(1912~1950), 권진규(1922~1973) 등을 열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들 작품을 보면 우리는 안다. 그게 하루아침에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남들 흉내 내지 않고 진짜 자기 것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권진규, '지원의 얼굴'(1967). 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지원의 얼굴'(1967). 권진규기념사업회]

강 작가는 특히 조각가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1967) 을 봤을 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압도됐다”고 했습니다. 한국 미술계에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던 1950~1970년대, 권진규는 테라코타 등을 사용하며 사실주의적인 작업에 매달린 작가죠. 그는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현대 조각을 배웠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신라 불상 등 한국 전통 조각을 탐구하며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갈고 닦았습니다. 강 작가는 “본질만 남기고 지극히 단순화한 작품에서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 이룬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만나던 날, 최근 대부업체에 담보로 잡혀 있던 권진규의 조각 작품 700여 점이 유족들의 기증으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갈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유족들은 미술관을 짓겠다는 약속을 받고 작품들을 40억원에 한 기업(대일광업)에 넘겼는데, 그 기업이 미술관은 짓지 않고 작품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사실을 알게 됐죠. 결국 유족은 소송 끝에 작품을 되돌려받게 됐고요. 작품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유족은 40억원을 마련해야 하니 기증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작가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후세대가 보존하고, 함께 보고, 감동을 나누는 일 또한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가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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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