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달리기하는 소설가, 수영하는 화가

중앙일보

입력 2020.08.25 00:12

업데이트 2020.08.2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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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달려가고 있다(···).”

‘달리기하는 소설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71)가 에세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9, 문학사상)에 쓴 글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소설가나 시인, 혹은 화가 등 예술가들은 운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하루키는 그런 편견을 깨뜨리는 데 일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그는 매일 조깅을 하고, 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며 자신이 얼마나 엄격하게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지 들려줍니다. 하루에 60개비의 담배를 피웠을 정도로 골초였던 그가 33세에 전업 작가가 된 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찾은 해결책, 그게 달리기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달리기가 아니라 ‘매일, 착실하게 달리기’였죠.

2018년 세계적인 화가 알렉스 카츠(93)를 e메일로 인터뷰했을 때 하루키의 달리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던 카츠에게 90대에도 왕성하게 창작하게 하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물었는데요, 그는 “매일 조깅과 수영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일찍이 몸과 두뇌의 연관성을 알았던 것 같다. 운동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뇌도 둔해진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카츠 관련 자료를 뒤져보면 그의 ‘피트니스 루틴’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김보희 ‘중문거리’, 2019, 130x162㎝ . [사진 금호미술관]

김보희 ‘중문거리’, 2019, 130x162㎝ . [사진 금호미술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단련해온 화가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이 지면을 빌어 잠깐 소개해 드린 오수환(74) 작가입니다. 2년 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집에서 양주시 장흥 작업실까지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다”고 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버스를 서너번 갈아타고 장흥에 도착한 뒤 20~30분 걸어서 작업실로 가는 이 여정을 가리켜 그는 ‘산책’이라고 불렀던가요.

또 다른 루틴으로는 더 느긋한 산책이 있습니다. 지난 5~7월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김보희(68) 작가의 전시에서 만난 그림 하나하나는 매일의 산책에서 건져 올린 풍경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제주 중문의 노을과 밤 풍경을 담은 ‘중문’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시선을 엿보게 했죠.

코로나19로 인해 헝클어진 일상은 그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켜줬던 루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하루키는 자신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달리기 루틴을 택했습니다만, 지금 이 팬데믹 상황은 우리가 무엇으로 버티고 또 어떻게 활력을 유지할지 돌아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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