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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제2의 인생 주는 기회"…코로나로 장기기증도 줄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장기기증 신청자는 작년 동기간 대비 27%가 감소했다. [본부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장기기증 신청자는 작년 동기간 대비 27%가 감소했다. [본부 제공]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대로라면 16년만에 7만명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9일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데 이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역시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캠페인이 전면 취소된 영향이 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장기기증 신청자는 작년 동기간 대비 27%가 감소했다. 이 추세면 올해 신청자는 6만명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2005년 기증 희망자가 7만명을 넘어선 이후 16년 만이다.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장기 기증자와 수여자, 기증 희망자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고로 떠난 딸, 5년 전 이미 장기 기증 서약    

2012년 6월 승마 도중 낙상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고(故)이윤희씨는 5명의 환자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이씨의 가족사진으로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윤희씨, 남동생 이상명씨, 어머니 정현씨, 아버지 이창열씨. [정현씨 제공]

2012년 6월 승마 도중 낙상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고(故)이윤희씨는 5명의 환자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이씨의 가족사진으로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윤희씨, 남동생 이상명씨, 어머니 정현씨, 아버지 이창열씨. [정현씨 제공]

고(故) 이윤희씨 어머니 정현(64)씨는 장기기증 희망자가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2년 6월 승마를 하던 중 갑작스러운 낙상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이씨는 5명의 환자에게 심장과 간장, 췌장, 신장 2개를 선물하고 떠났다. 정씨는 당시 뇌사 판정을 받은 딸의 장기기증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닐까 우려하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기증 절차에 동의하고 집으로 돌아와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딸의 소지품에서 장기기증 카드를 발견하고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아이가 이미 5년 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해놨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었구나 싶어 위안이 됐고 엄마 아빠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마음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결국 한 줌의 재로 남는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장기라면 그 사람에게 제2의 인생을 줄 수 있는 바꿀 수 없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남동생 이상명(30)씨 역시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인슐린으로 버티다 기증받고 다시 태어나

지난해 췌장 이식 수술을 받은 변지현씨는 이번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본인 역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신청했다. [변지현씨 제공]

지난해 췌장 이식 수술을 받은 변지현씨는 이번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본인 역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신청했다. [변지현씨 제공]

1형 당뇨를 앓았던 변지현(26)씨는 3월 16일이 자신의 두 번째 생일이라고 말했다. 25살이던 지난해 3월 16일 췌장 이식 수술을 받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기 때문이다. 당뇨가 시작된 13살부터 변씨는 하루에 4번 직접 자신의 몸에 인슐린 주사를 놨다. 변씨는 “처음에는 학교에 이 사실을 공개했는데 생소한 장면이다 보니까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변씨는 인슐린 주사를 파우치 속에 숨겨 화장실에서 몰래 맞거나 나중엔 주사 맞기를 거부해 쇼크로 응급실에 간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25살, 변씨는 장기 이식이 결정됐다는 전화를 받고 울산에서 곧장 서울로 달려왔다. 수술 이후의 삶에 대해 변씨는 “활동에 제약이 없어지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심했던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변씨는 지난 3월 대학교 새내기로 입학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변씨 이번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기증 희망 신청을 마쳤다.

#아버지 이어 두 딸도 10대 때 기증 약속 

2000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이종태씨가 여행용 캐리어에 달고 다니는 세이브 카드다. 이씨는 "세이브 카드는 장기기증 신청을 했다는 의미라 어떤 형태로든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종태씨 제공]

2000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이종태씨가 여행용 캐리어에 달고 다니는 세이브 카드다. 이씨는 "세이브 카드는 장기기증 신청을 했다는 의미라 어떤 형태로든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종태씨 제공]

이종태(54)씨는 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이씨는 장기기증을 했다는 세이브 카드 덕을 본 적이 있다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두 달 사이에 지갑을 3번 분실한 적이 있는데 한 푼도 분실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돌려받았었다”며 “지갑 안에 있던 ‘세이브 카드’를 본 한 사람이 ‘좋은 일은 한다’는 쪽지까지 써서 돌려줬다”고 말했다.

현재 각각 25살, 26살인 이씨의 두 자녀도 18살, 19살 무렵 장기기증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씨는 “외국에서처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 등에서도 꼭 새벽 시간에만 홍보 영상을 틀어주는데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메인 시간에 방영해 자주 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다고 해서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사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어도 실제 기증할 때는 가족 중 선순위자 1명의 동의를 반드시 받게 돼 있다. 한국 정서상 가족 입장이 나뉘는 경우 진행이 어렵기 때문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경우 가족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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