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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4관왕 美아카데미, 소수자 비중 낮으면 작품상 안 준다

중앙일보

입력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쥔 현장이다. [AFP=연합]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쥔 현장이다. [AFP=연합]

여성‧유색인종‧성소수자‧장애인 등이 비중있게 참여한 영화여야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올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을 안겼던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이 작품상 후보 조건에 다양성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美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다양성 조건 신설

아카데미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8일(현지 시간) 2024년 제96회 시상식부터 다양성에 관한 신설 기준 4가지 중 2개는 반드시 충족해야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A)스크린 속 표현, 주제 및 내러티브 (B)창조적 리더십과 프로젝트팀 (C)산업 접근성 및 기회 (D)관객 개발 등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하기까지 스크린 안팎을 영역별로 나눈 4가지 기준을 세우고 이 중 최소 2가지 영역에서 그간 주류 영화에 소외돼온 여성, 인종 또는 민족 집단,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가 비중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백인들의 잔치 #OscarsSoWhit' 오명 벗을까

참여 비율은 각 기준마다 세부항목으로 정했다. 그간 아카데미시상식에 쏟아진 ‘백인들의 잔치(#OscarsSoWhite)’란 비판 때문일까. 특히 인종에 대해선 백인을 제외한 “아시아, 히스패닉‧라틴,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 선주민, 중동‧북아프리카, 하와이 혹은 다른 태평양섬 선주민, 그 밖의 부족 또는 민족” 등을 규정에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참여여부를 중시했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다. 기준A에 통과하기 위해선 ①주연 배우나 주요 조연 중 적어도 한 명이 위와 같은 백인 외 다인종 혹은 민족 출신일 것 ②조단역의 최소 30% 이상이 다인종‧여성‧성소수자‧장애인 중 2가지 이상을 포함할 것 ③영화의 주요 줄거리, 주제 또는 내러티브가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일 것 등 3가지 세부항목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상징하는 오스카 트포리. [AP=연합]

아카데미 시상식을 상징하는 오스카 트포리. [AP=연합]

제작 현장을 아우른 기준B에선 연출‧촬영‧작곡‧의상‧캐스팅‧편집‧헤어‧메이크업‧프로듀서‧미술‧사운드‧VFX‧작가 등 책임자급 직책 중 적어도 두 명이, 혹은 전체 제작진의 최소 30%가 다인종‧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주류에서 소외돼온 집단 출신일 것 등의 세부항목이 포함됐다.

산업 현장 다양성 더해 새 인력 개발도 조건 

제작‧배급 분야에서 이런 소수자 집단에 유급견습‧인턴십‧교육‧기술개발 기회를 주고(기준C), 마케팅‧홍보‧배급사 내 여러 명의 고위 임원이 이러한 소수자 출신일 것(기준D) 등 영화산업의 전 과정에 걸친 세세한 조건도 마련했다.

다만, 지금으로선 작품상 외 분야는 기존 규정을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실제 시상식 풍경이 얼마나 바뀔지는 2024년 시상식을 두고봐야 할 듯하다.

아카데미 "다양성 조리개 넓히겠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기생충'이 각 분야에서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껴안았다. [로이터=연합]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기생충'이 각 분야에서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껴안았다. [로이터=연합]

이번 결정은 아카데미측이 올해까지 유색인종과 여성 회원 수를 두 배로 늘린데 이어 지난 6월 아카데미측이 오스카 수상 자격에 다양성을 위한 새 기준 개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데 따른 결과다. 당시 아카데미측은 이를 ‘아카데미 어퍼처 2025’ 계획이라 명명했다.

아카데미측은 이번 다양성 규정에 대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다양성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스크린 안팎에서 공평한 표현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됐다”면서 “영국영화협회(BFI) 다양성 표준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현재 오스카상 후보 자격을 판단하는 미국영화제작가조합(PGA)와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전 세계 인구의 다양성과 영화의 창조성을 반영하기 위해 어퍼처(Aperture‧조리개)는 더 넓어져야 한다. 아카데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러한 기준이 우리 산업에서 오래 지속되고 필수적인 변화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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