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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30대 강도 잡으니 15년전 그 아이…씁쓸한 경찰서 재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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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15년 전에도 다시는 않는다더니…또 범죄를 저지르면 어떡하냐” 

경기도 부천에서 최근 강력사건의 피의자를 붙잡은 부천원미경찰서 형사과 강력계장 손은호(53) 경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도혐의로 검거한 30대 A씨를 보고 15년 전 자신이 수사했던 소년범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손 경감은 8일 "A씨는 처음에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15년 전 사건을 얘기해줬더니 끝내 고개를 떨구더라"며 씁쓸해했다.

A씨의 사건은 한 달여 전인 지난 7월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천의 한 단독주택에서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일어난 일이다. 당시 혼자 살고 있던 50대 후반 여성 B씨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러던 순간 욕실 한편에서 웅크리고 숨어있던 한 남성이 나타나 B씨를 위협했다. 이 남성은 B씨가 집에 오기 전 창틀을 뜯고 욕실로 들어가 B씨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B씨가 혼자 사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B씨를 위협해 목걸이와 현금 일부를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또 주변 폐쇄회로TV(CCTV) 확보에 나섰다. 경찰은 인근 골목 CCTV에서 B씨의 가방을 들고 한 여관으로 들어가는 한 남성을 포착했다. 여관으로 들어간 이 남성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피의자가 여관 투숙객이라는 걸 특정한 경찰은 그의 이름을 알아냈다. 세탁소에 맡겼던 세탁물에 달린 이름표를 통해서다. 당시 손 경감은 이를 보자마자 동명이인인 15년 전 자신이 잡았었던 소년범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손 경감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추가 CCTV를 통해 이 남성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다.

15년 전 소년범이 30대 돼 눈 앞에  

경찰.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경찰.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15년 전인 2005년. ‘업둥이(집 앞에 버려진 아이)’로 자라 마음에 상처가 깊었던 A씨. 당시 10대 중후반이었던 그는 가출 후 100여건 넘는 절도를 저지르며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부천소사서에서 근무 중이던 손 경감은 그를 붙잡은 후 그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A씨는 “양부모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손 경감 등 경찰은 그의 부모도 찾아주면서 교화를 위해 노력했다. 경찰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A씨와 부모는 다신 이별이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부모는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고, A씨는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부모는 정성스레 A씨의 옥바라지도 했다.

그러나 A씨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손 경감과 A씨가 15년 만에 경찰서에서 재회했다. 10대였던 A씨는 30대 후반이 돼 있었다. 처음에 A씨는 손 경감을 못 알아봤다고 한다. “우리가 부모님까지 찾아줬었는데 기억이 안 나냐”는 말에 그제야 과거를 떠올렸다고 한다. A씨는 이번에도 15년 전처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그렇게 말해놓고 또 범죄를 저지르면 어떡하냐”는 손 경감 말에 A씨는 고개를 떨구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A씨는 해당 혐의를 인정했고, 경찰은 그를 강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손 경감은 “이런 사례가 꽤 많다”며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선도되는 경우도 많지만, 재범률이 높은 편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달라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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