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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험쥐냐" 러시아 교사들 코로나 백신접종 집단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한 러시아에서 백신 접종 집단 거부 조짐이 일고 있다.

교사들 “코로나 백신 실험 쥐 되고 싶지 않아” #접종 거부시 임금삭감·해고 등 불이익 우려 #의사조차 “러, 백신 개발 날조…안 맞을 것”

백신 접종 우선 대상자로 꼽힌 교사들이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면서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고 나서면서다.

러시아가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공식 등록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 러시아 교사들이 백신 접종 우선대상자로 꼽히자, 일부 교사들은 이 백신의 안전성을 이유로 "실험 쥐가 되고 싶지 않다"며 백신 거부 입장을 밝혔다. [EPA=연합뉴스]

러시아가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공식 등록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 러시아 교사들이 백신 접종 우선대상자로 꼽히자, 일부 교사들은 이 백신의 안전성을 이유로 "실험 쥐가 되고 싶지 않다"며 백신 거부 입장을 밝혔다. [EPA=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러시아 교사 조합인 ‘우치텔’(Uchitel)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지침’ 거부를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을 진행 중이다. 우치텔은 교사들에게 “백신의 안전성이 우려된다”며 백신을 맞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러시아 교육부는 지난 1일 초·중·고교가 정상 개학하면서 교사들에게 ‘스푸트니크 V’ 접종을 권유하는 지침을 내렸다.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과 매일 접촉하는 등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러시아 교사들은 이 백신이 아직 임상 3상 시험을 마치지 않는 등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유리 발라모프는 “러시아 백신은 해외에서 개발 중인 백신보다도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백신을 맞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실제 러시아에서 교사들의 백신 접종률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교사들은 백신 접종 거부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교육부는 교사들의 백신 접종을 ‘권유’하고 있다지만, 각 학교 백신 접종률에 따라 차등 보상 조건을 내거는 등 강제성이 엿보이고 있다. 이에 주 정부와 일선 학교는 교사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교사들은 러시아 보건부와 교육부가 교사들을 상대로 백신 테스트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 교육 당국과 학교장이 교사들의 권리를 쉽게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교사들을 실험용 쥐인 ‘기니피그(guinea pig)’로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CNN은 백신 접종을 거부한 교사들에 대한 조치는 학교별로 다르지만, 교사들은 임금 삭감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우치텔의 마리나 발루예바 공동의장은 “러시아 정부는 늘 그래왔듯 학교장을 통해 교사들의 백신 접종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시아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집단은 교사뿐만이 아니다. CNN에 따르면 교사와 함께 백신 접종 우선 접종자로 꼽힌 의사들도 백신에 불신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자신의 두 딸 중 한 명이 스푸트니크 V 백신을 맞았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자신의 두 딸 중 한 명이 스푸트니크 V 백신을 맞았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의사들은 러시아가 정치적 목적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승인을 서두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정부 운동가이자 의사인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는“러시아는 과학 강대국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으로 비치기 위해 백신 개발에 압력을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스푸트니크 V의 안전성과 효능이 우려되고, 의사들조차 접종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한 외과 의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내과 의사들은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의 질이 낮다고 말했다”면서 “러시아 보건부가 아무리 스푸트니크 V의 안전성과 효능을 주장해도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러시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브치옴’에 따르면 러시아인 52%가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접종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접종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들은 백신을 불신하거나 안전성을 우려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지난달 중순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V를 승인하고,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으로 공식 등록했다. 공식 등록한 백신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접종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전문가들은 스푸트니크 V의 안전성과 효능에 우려를 쏟아냈다. 임상 시험의 최종 단계인 3상 시험을 생략했고, 1·2상 시험 참가자 수가 적어 과학 논문지에도 게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는 미국은 러시아 백신을 두고 “미국은 사람은 고사하고 원숭이에게도 러시아 백신을 접종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스푸트니크 V 공식 등록을 발표하며 자신의 딸 중 한 명도 백신을 맞았고, 약간의 미열 증상을 보였지만 금세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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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i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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