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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디지털 교도소'···고대생 "억울하다" 극단 선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지털 교도소 페이지 화면. [인터넷 캡처]

디지털 교도소 페이지 화면. [인터넷 캡처]

성범죄 등에 연루된 것으로 거론되는 사람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이름과 얼굴 등이 공개된 A(2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5일 경찰과 A씨의 지인 등에 따르면 고려대 학생인 A씨는 이달 3일 오전 집에서 숨진 채 가족에게 발견됐다.

디지털 교도소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A씨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A씨가 누군가에게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며 A씨의 얼굴 사진·학교·전공·학번·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게시했다. A씨가 누군가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신저 내용·음성 녹음 파일 등도 공개했다.

A씨 억울하다고 반박했지만 허사  

A씨는 신상공개 이후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려 "'디지털 교도소'에 올라온 사진과 전화번호, 이름은 내가 맞다"면서도 "그 외의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A씨는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URL(링크)을 누른 적이 있는데 그때 핸드폰 번호가 해킹당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A씨가 해명하고 고소 조치 등을 하겠다고 밝히자 '디지털 교도소'는 잠시 A씨의 신상을 비공개 처리했지만, 그 이후엔 A씨의 해명을 함께 실으며 다시 신상을 공개 상태로 유지했다.

'디지털 교도소'가 A씨 죽음으로 내몰았나
A씨의 지인은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려 "'디지털 교도소'에 지난 7월 신상이 공개된 이후 A씨가 악플과 협박 전화, 문자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A씨가 재학했던 학과 학생회는 "A씨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현재 고려대 재학생·동문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와 '에브리타임', '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에서는 '디지털 교도소'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n번방 사건으로 유명해진 디지털 교도소  

디지털 교도소는 n번방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성범죄자 등 강력 범죄의 혐의자의 얼굴 사진, 실명, 거주지, 직업, 휴대전화 등을 공개해서다.
사이트 운영자는 소개 글에서 "악성 범죄자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대한 처벌의 한계를 느꼈다"며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디지털교도소를 연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동유럽권 국가 벙커에 설치된 방탄 서버에서 강력히 암호화돼 운영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100%가 보장되니 마음껏 댓글과 게시글을 작성해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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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인권 훼손, 공권력 무력화하는 디지털 교도소

그러나 법조계와 범죄 수사 전문가들은 이 같은 디지털 교도소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개인의 인권이 훼손될 수 있고, 국가의 정상적인 사법 체계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A씨 죽음은 이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찰도 이 같은 우려로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운영자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준형(법무법인 시원) 변호사는 "사회적인 심판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디지털교도소는 법률의 근거 없이 개인적이고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사실상의 처벌로서 이는 범죄에 해당된다. 이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A씨와 같은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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