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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신상공개 ‘디지털 교도소’…21세기판 마녀재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들. [디지털 교도소 캡처]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들. [디지털 교도소 캡처]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신상정보 공개는 명백한 불법이고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법조계에서는 "아무리 지탄받는 범죄자라 하더라도 신상 공개는 신중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해당 사이트의 운영자는 "얼마든지 처벌받을 각오가 돼 있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성범죄자·사이코패스 신상정보 알림이'를 내건 디지털 교도소는 6일 현재도 운영 중이다. 성범죄자 59명·아동학대 6명·살인자 10명의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공개했다. 공개 정보에는 개인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구체적인 혐의와 재판 일정 등도 포함돼 있다.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이고 근황까지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성범죄 처벌 관대해 사회적 심판받게 개설" 

페드로(Pedro)란 이름의 운영자 A씨는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사이트 개설 이유를 밝혔다. 사이트 개설의 직접 적인 계기는 지난 4월의 n번방 사건이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약 500만명이 용의자 및 가입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고 동의했지만 경찰은 '실익이 없다'며 거부했다.

A씨는 이후 인스타그램 계정(@nbunbang)을 통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갓갓' 문형욱,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등의 신상정보를 언론보다도 먼저 공개했다. A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만명에 달할 만큼 관심을 끌었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계정이 삭제됐다. 또 A씨의 인스타그램에 댓글로 제보를 남긴 사람들 중 일부가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A씨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삭제되고 댓글 제보자가 고소당하는 걸 보고 사이트 개설을 결심했다"고 했다.

“방탄 서버 암호화해 처벌 걱정 없다”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는 "본 웹사이트는 동유럽권 국가 벙커에 방탄 서버(Bulletproof Server)를 두고 강력히 암호화해 운영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A씨는 "해외 서버업체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절대 공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개설했다"며 "댓글을 남기는 방문자도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다 댓글 제보자가 고소당하는 일이 발생해 아예 추적이 불가능한 사이트를 연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상 공개 대상은 2차 확인 거쳐 선정 

A씨는 디지털 교도소에 공개하는 성범죄자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서도 자신했다. 그는 "판결문과 사건번호, 기사 등을 대조하는 등 기준을 세워 신상 공개 대상을 결정해왔다"며 "범죄자 주변인을 찾아내 2차 확인하는 절차도 거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라면 얼마든지 처벌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버 비용 월 800달러는 사비로 충당  

디지털 교도소에는 하루 평균 2만명이 방문한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방문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 서버 규모를 키우고 방어 시스템 증설도 진행 중이다. 사이트 운영에는 월 800달러가량의 금액이 들지만 A씨는 이를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A씨는 "범죄자 신상정보를 처음 올리면, 여죄에 대한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범죄자에 대한 제보는 일주일에 한 건 정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로부터 하루에 2건, 많게는 5건까지 협박도 받는다고 털어놨다.

"지탄받는 범죄자라도 신상공개는 신중해야" 

하지만 디지털 교도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타인이 정보통신망을 활용해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공개할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제55조 제1항 위반에 해당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이학민 변호사(법무법인 선린)는 "A씨가 개설한 사이트는 명예훼손, 모욕죄 등이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며 "아무리 지탄받는 범죄자라 하더라도 신상 공개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등록하고 있다"며 "디지털 교도소 운영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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