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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더는 국민을 궁지로 몰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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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피호봉호(避狐逢虎)’란 사자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뜻이다. 나쁜 일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일을 당한다는 말인데, 살 만큼 산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일이다. ‘전호후랑(前虎後狼)’은 좀 더 극한에 몰린 경우다. 호랑이와 이리의 앞뒤 순서를 바꾸면 더욱 들어맞는다. 이리가 덤벼들어 전력으로 앞문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뒷문으로 호랑이가 들어오니 살아날 길이 없는 형국이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 만난 격 #법무장관 정의는 정권 안보 #대통령까지 국민 갈라치나 #국민 화나면 가죽도 못 남겨

요즘 이처럼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만이 아닐 성싶어 하는 얘기다. 우선 우리의 법무장관 덕분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위선자’라는 조국 여우를 간신히 몰아냈더니, 추미애라는 호랑이가 들어와서 거침없이 혼을 빼놓는다. 여우는 그나마 변명이라도 했다. (사실은 변명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변명만 하고 있다. 며칠 전 아내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증언 거부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48조만 300번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변명이고 뭐고 막무가내다. 두 차례 검찰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자르고 정권 수사를 맡은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키는 강한 이빨과 발톱을 과시하고도, 태연히 “정의를 구하는 인사”라 뇌까릴 수 있는 두꺼운 가죽을 가졌다.

‘드루킹 특검’ 수사 검사, ‘신라젠·라임’ 수사검사, ‘채널A 사건’ 감찰 검사 모두 사표를 내게 만든 걸 보면 그가 구하려는 정의가 무엇인 줄 알겠다. 아낌없이 몸을 날려 충성을 표시한 검사는 영전시켜 자꾸만 기어오르는 검찰 조직에 ‘줄 잘 서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걸 보면 더욱 명백하다. ‘정권 안보’가 그가 구하려는 정의인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렇다.

호랑이의 강한 이빨은 독설에서 더욱 빛난다. 호랑이는 적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싸울 뿐이다. 청문회장이건 상임위 회의실이건 우리의 법무장관이 성의 있게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전설적인 육두문자는 빼더라도 “번지수가 틀렸다” “소설을 쓰시네” “새삼 지휘랍시고” “언론의 관음증세”처럼 싸움을 거는 듯한 화법이 그의 주특기다.

선데이칼럼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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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우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겠거니 했는데, 결국은 같은 부류였다. 아들의 ‘황제 탈영’ 소설은 정작 본인이 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좌관이 뭐하러 사적인 지시를 받느냐”는, 만 하루도 못 버틸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했다. 사랑하는 아들, 결국은 자신을 구하는 게 우리 법무장관의 정의였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그렇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한 가지만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다음 자리’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것은 서울시청을 거쳐 청와대에 이르는 것일 터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해법에까지 오지랖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친문 권리당원들의 눈에 들으려 독기를 품고 무리를 할 까닭이 없다. 노무현 탄핵에 한표를 던졌던 전력 탓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체급을 키워 청와대로 사무실을 옮기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그곳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호봉호, 전호후랑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나 말이다. 전 정권의 국정 농단에 지친 촛불 민심 덕분에 일어선 정권이 호랑이가 돼 국민과 싸움을 벌인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이 외치던 ‘죽창가’를 우리는 기억한다. “중요한 건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던 그의 말에 한일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은 모두 ‘토착 왜구’가 됐다.

선무당 국토장관이 아파트를 서민과 청년층에게 접근 불가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싸움판을 벌여놓았다. 급기야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 ‘갈라치기’ 신공을 몸소 시전한다. 개신교 대 비개신교, 의사와 간호사 사이까지 갈라놓는다.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두렵다. 자기들 말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데 좌충우돌 불안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오죽하면 “나라가 니꺼냐” 구호가 나오고, “백성과 싸우지 마소서” 상소가 올라오겠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호랑이는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두 명에게 해코지할 순 있으나, 결국은 죽어서 가죽만 남게 되는 게 세상 이치다. 루쉰(魯迅)이 그걸 말해준다.

“만일 호랑이와 만나면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가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사라져 버린 다음 내려옵니다. 만약 호랑이가 언제까지나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나무에서 굶어 죽어야겠지만 그 전에 자기를 나무에 동여매 놓아 시체라도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별도리 없이 먹혀버릴 수밖에 없겠지만 이쪽에서도 한 번쯤 깨물어 줍니다.” (『양지서(兩地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게 이 나라 백성들이다. 작고 무딘 그들의 이빨이 가소로울지 모르나 입이 여럿이면 다르다. 호랑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가죽은 걸레로도 못 쓴다. 더는 국민을 궁지로 몰지 말라. 가죽도 못 남기는 호랑이가 되지 않으려거든. 다시 말해 최악의 실패 정권으로 역사에 남지 않으려거든 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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