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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셜록 홈즈’ 빗장 풀렸는데, 불법 막을 관련법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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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08면

50년 만에 허용된 탐정

탐정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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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회계법인 대표인 김모(62)씨는 회사를 그만둔 경리 직원을 찾기 위해 탐정업체를 찾았다. 경리직원이 4년 동안 회삿돈 약 15억을 횡령해온 사실을 직원이 퇴사한 후에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초 관할 경찰서에 범죄신고를 했지만, 경찰 수사는 2달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김 씨는 결국 탐정의 문을 두드렸다. 사건을 의뢰 받은 유우종 탐정중앙회 중앙회장은 4개월 동안 탐문하던 중 해당 직원이 성형수술로 외모를 바꿨단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김씨는 “경찰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속는 셈 치고 탐정업체에 의뢰했는데 진짜 찾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비용이 적지 않았지만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20년째 국회서 법안 발의만 반복 #불륜 캐기보다 실종·목격자 찾기 #경찰 인력 부족 탓 수요 뜀박질 #15억 꿀꺽 퇴사 직원 찾아내고 #회사 기밀정보 유출 정황 의뢰도 #1명 일주일 고용에 평균 400만원

#5년 전 직장인 박모(35)씨는 저녁 술자리 후 남성 동료와 대리운전을 통해 귀가 중 자동차 뒷좌석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엔 직장 내 성추행 사실이 부끄러워서 신고도 하지 못했다. 박 씨는 지난달 가해자 고소를 위한 증거자료를 찾아달라며 탐정사무소에 의뢰했다. 김두현 명탐정사무소 대표는 “5년이나 지난 일이라 유일한 사건 목격자인 당시 대리운전기사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며 “당시 서비스를 이용하던 대리운전업체 등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목격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탐정업, 흥신소·심부름센터와는 달라

최근 10년간 탐정 (민간조사사) 현황

최근 10년간 탐정 (민간조사사) 현황

지난달 5일부터 탐정이란 용어가 허용되면서 누구나 탐정 간판을 내건 사무소 운영이 가능해졌다. 올 2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신용정보법) 40조를 개정해 ‘탐정 명칭 사용 금지’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 허용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50여년 만에 탐정업의 첫발을 뗀 것이다.

애초 처음부터 우리나라가 탐정업을 금지해온 것은 아니다. 신용정보법의 전신인 흥신업단속법이 1961년 제정됐을 땐 영업신고, 무분별한 뒷조사 등 흥신소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이 핵심 골자였다. 이 법이 1977년 신용조사업법으로 바뀌면서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일반인을 포함한 신용정보회사 등의 탐정 활동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50년 가까이 채권추심 경우를 제외한 일반인과 신용정보회사가 특정인의 연락처 및 소재지를 파악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탐정 대신 등장한 게 민간조사원 또는 민간조사사였다.

최근에야 국내에서도 탐정 명칭 사용은 허용됐지만 전문 직업으로서 탐정업을 뒷받침하는 관련법은 여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현재에도 민간조사, 흥신소, 심부름센타 등 유사한 이름으로 민간조사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간혹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업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반면 실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민간조사업계를 이끌어나가려는 업체도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국회에서는 민간조사원(사립탐정) 관련 법안 7개가 상정됐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엔 민간조사업을 포함한 신직업 육성 계획이 정부 안으로 나왔고 이후 공인탐정법안이 발의됐지만 역시 법제화까지 가지는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년째 국회에서 법안 발의만 반복됐다”면서 “탐정업이 변호사나 공인회계사처럼 전문직업으로서 제대로 뿌리내려 활성화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법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의뢰 10건 중 6~7건은 “사람 찾아달라”

최근 10년간 탐정 (민간조사사) 현황

최근 10년간 탐정 (민간조사사) 현황

탐정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데는 부족한 경찰 인력 부족 문제가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찰 인력은 총 12만2913명으로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는 422명이다. OECD 평균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 288명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손상철 대한민국탐정협회 회장은 “일반적으로 경찰 수사 인력은 강력범죄와 같은 형사사건에 집중되는 반면 상당수 국민 민원은 민사사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의 주목을 덜 받는다”며 “비용을 들여서라도 민간 조사업체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최근엔 ‘불륜 미행’ 위주에서 벗어나 탐정 조사 영역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많은 의뢰 건수는 ‘사람 찾기’다. 유우종 탐정중앙회 중앙회장은 “요즘엔 조사 노하우를 바탕으로 장기간 발품 팔아야 하는 실종자, 목격자 찾아달란 의뢰가 10건 중 6~7건 정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기업 관련 분야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김두현 명탐정사무소 대표는 “회사 내부 기밀 정보가 유출된 정황을 찾아 달라거나, 비상장기업에 대한 정보 파악 의뢰도 최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덩달아 탐정사도 지식재산권 다툼에 대한 증거 수집이나 디지털 포렌식에 대한 조사 방법에 대해 꾸준히 습득해야만 업계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정 활동 범위가 커지면서 의뢰 비용도 소액부터 고액까지 천차만별이다. 현장을 나가야 하는 직원 1명당 하루 인건비는 30만원. 차량 이동이 필요하다면 승용차 기준 15만원이 추가로 붙는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투입되는 숙박비, 장비 이용료가 20만원 안팎이다. 직원 1명 고용에 대한 하루 치 비용만 60만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일주일 기준 평균 400만원이 넘게 비용이 든다. 유우종 회장은 “쉬운 사건의 경우 1주일이면 해결할 수 있지만 보통 짧게는 한 달, 길게 2~3개월은 소요되고 그에 따른 인력 투입과 장비, 식대 비용이 추가로 계산된다. 사건마다 상황이 제각기이다 보니 비용 역시 때마다 다르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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