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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로 기운 '김명수의 대법'…5년전 헌재 결정도 뒤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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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사건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0.5.20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발언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사건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0.5.20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대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지정한 박근혜 정부 당시의 처분에 대해 “위법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1·2심과 헌법재판소가 모두 ‘합법 처분’으로 판단했던 사안을 뒤집은 것이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대법원의 진보 색채가 더욱 뚜렷해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정부 법외노조 통보 위법” #10대 2로 1·2심 합법 판결 파기 #전교조 7년만에 합법화 길 열려 #문 정부 임명 대법관 진보색 강해 #다수의견 “법률 아닌 시행령 따른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 #소수의견 “다수, 법체계 애써 무시 #시행령 조항의 정당성 부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7년 만에 합법 노조의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이 커졌다.

전교조 변호 이력이 있는 김선수 대법관과 전원합의체 구성원이 아닌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박근혜 정부 당시의 처분은 위법했다”고 판시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교육감 선거 불법 개입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해직 교사 9명에 대해 조합원 자격을 유지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교원노조법상 교원노조 자격은 현직 교사에게만 있고,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가 가입할 경우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이들 법률을 근거로 둔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따른 조처였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행정관청은 노조 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발생할 경우 30일 내에 시정을 요구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다.

이날 다수 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과 권순일·박상옥·박정화·민유숙·노정희·김상환·노태악 대법관 등 8명의 대법관은 이 시행령의 근거가 된 두 법에 법외노조 통보 관련 규정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는 근로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구체적 법률 근거가 없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근거해 전교조에 통보한 것이라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률상 근거 없이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법률유보원칙이란 인권을 침해하고 보장하는 방법은 법률로만 정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이다.

대법, 1·2심과 헌재 결정까지 뒤집어 … 교총 “정치적 판결”

대법관 구성 및 임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대법관 구성 및 임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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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이 시행령의 연원까지 따지면서 과거 노조 억압에 쓰였던 ‘악법(惡法)’에 가깝다는 주장도 했다. 대법원은 “이 시행령은 행정관청이 노조 지위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1987년 ‘노동자의 단결권과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던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사실상 동일하다”고 했다.

이에 반해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다수 의견은 완벽한 법체계를 애써 무시하면서 입법과 사법의 경계를 허물고, 이 사건 법률 규정에 관한 분명한 해석을 회피한 채 시행령 조항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교조는) 법이 정한 요건은 지키지 않으면서 그 요건을 충족했을 때 주어지는 법적 지위와 보호만 달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게 받아들여지는 법체계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현대 문명사회에선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다수 의견과 달리 “해당 법령과 시행령의 조항은 매우 명확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도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이날 대법원의 법리가 지난 6월 최대주주의 주식거래 시 양도소득세 할증과 관련해 시행령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던 것과 다소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소수 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은 “국회가 법률로 직접 규율해야 할 사항을 행정입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라며 이번 다수 의견과 비슷한 주장을 폈다.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사안마다 시행령에 대한 판단을 달리해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판결은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대법원의 진보적 색채가 한층 뚜렷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4명의 현 대법관 중 10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고, 이 중 불참자 2명과 이동원 대법관을 제외한 7명이 전교조 편에 섰다. 8일 퇴임하는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자로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가 들어오면 현 정부 임명 대법관은 11명으로 늘어난다. 대법원은 이미 국정농단,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과 관련된 사안에서 잇따라 진보 쪽이 환영할 만한 쪽으로 원심을 속속 뒤집어 왔다.

이날 판결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조처가 온당했다는 1·2심과 헌재의 일치된 의견을 뒤집은 것이다. 헌재는 2015년 5월 현직 교원만을 노조원으로 본 교원노조법에 대해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이 같은 사안을 놓고 (1·2심 판결이나 헌재 결정과) 다른 선고를 내린 것은 상식과 국민의 법 감정상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법리적 판단보다 다른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결과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도 대법원에 가면 (혐의 입증 여부와 별개로)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태인·남궁민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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