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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처도 모르는데, 투자금 20조부터 못박은 '뉴딜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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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가 출범한다.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뉴딜과 신재생에너지 같은 그린 뉴딜 관련 기업을 육성할 목적이다. 세제 혜택을 주는 뉴딜 인프라펀드도 만든다. 뉴딜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170조원 규모의 뉴딜금융 조성 방안도 내놨다.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참여형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참여형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내놓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의 세부 실행방안이다.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큰 충격을 받은 만큼 한국판 뉴딜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취지는 공감하나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국민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뉴딜펀드다. 20조원 중 정부(정책금융기관 포함)가 7조원, 민간이 13조원을 채운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할 모펀드를 만들고, 민간 자금을 매칭해 자펀드를 조성하는 형태다. 실제 뉴딜 관련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건 민간이 만드는 공모펀드다. 일반 국민은 이 공모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국민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정책펀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민간 성공사례 있다면서 관제펀드 조성?

그런데 투자 대상부터 명확하지 않다. 예시로 든 건 그린 스마트 스쿨, 수소충전소 구축 같은 민자사업, 디지털 사회간접자본(SOC) 안전관리시스템,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뉴딜 인프라 등이다. 일반적으로 펀드는 성과가 좋으면 투자자가 늘고, 투자금액도 늘어난다. 어디에 투자하는지,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그 성과를 가른다. 그런데 뉴딜펀드는 민간 투자금을 13조원으로 정해뒀다.

투자 가치를 모르는데 금액부터 정해놓은 셈이다. 조만간 투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운용업계에선 벌써 ‘사실상 정부가 찍어주는 회사에만 투자하라는 건데 자율적인 운용이 가능할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생태계 조성을 돕고,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펀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펀드도 손실 가능성이 있다. 일단 정부가 대는 7조원은 후순위 출자자 역할을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0조원 중 7조원, 즉 자펀드 상황에 따라서 평균 35%까지는 손실이 나도 정부가 먼저 흡수하는 구조”라며 “뉴딜사업은 대체로 공공기관이 상대방이기 때문에 큰 손실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가 손실을 볼 확률은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돈이란 건 없다. 다 국민의 세금이다. 만약 이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한다면 국민이 손실을 보는 것과 같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리스크를 줄여서 모금액을 늘리겠다는 의도인데 모객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정부 지출이 확대돼 일부 투자자의 손실을 납세자 전체가 떠안는 구조”라고 말했다.

금융지주사 뉴딜펀드 참여 계획. 기획재정부

금융지주사 뉴딜펀드 참여 계획. 기획재정부

관제펀드 논란도 불가피하다. 정부는 정책형 뉴딜펀드 조성과 함께 민간 뉴딜펀드의 활성화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NH-아문디자산운용의 ‘필승코리아 펀드’를 사례로 들었다. 지난해 8월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한다며 만든 펀드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가입하며 큰 관심을 받았는데 8월 말 기준으로 50%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돈 될 만한 투자처라면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먼저 움직인다”며 “뉴딜 영역을 키워야 한다면 투자를 해서 성장할 발판을 깔아주는 게 정부의 역할인데 왜 이런 복잡한 관제펀드를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계획의 또 다른 한 축은 뉴딜금융 지원방안이다. 정부가 100조원, 금융회사가 70조원을 투입한다.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전략회의에는 신한·KB·하나·우리·한국투자·메리츠·BNK(부산은행)·JB(전북은행)·DGB(대구은행) 금융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등이 일제히 참석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5대 금융지주회사가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 호응하여 향후 5년간 약 70조원 이상의 자금을 대출·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말이 좋아 호응이지 사실상 동원령이란 비판이 나온다. 주요 금융지주회사는 회의에 앞서 이미 자체적인 자금 공급 계획을 내놨다. 신한금융이 앞장섰다. 향후 5년간 뉴딜 정책과 관련해 총 28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KB와 하나, 우리금융은 약속이나 한 듯 10조원씩 신규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주요 투자 키워드는 디지털과 그린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까지 투자를 안 했던 분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투자를 확 늘릴 분야도 아니지 않으냐”며 “디지털이야 그렇다 치지만 솔직히 신재생이나 농촌 태양광 같은 게 돈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70조원으로 출발하지만, 사업 추진 속도에 따라 추가 청구서가 날아들 여지도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 땐 판매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더니 필요할 땐 불러서 ‘돈 쓰라’고 하는 권위주의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장원석·홍지유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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