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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처럼 사이다 날렸다"···이게 '시무7조' 신드롬의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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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 7조.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시무 7조.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옛 상소문 형식으로 비판한 청와대 국민청원 글인 이른바 ‘시무 7조’가 연일 화제다. 1일 인터넷에선 숱한 패러디가 쏟아지면서 “신드롬급 인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에 불만이 쌓인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고 지적한다.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해당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건 지난달 12일이다. 1만3700여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부동산·경제 등 정부 정책이나 여권 인사 등 비판 대상을 일곱 갈래로 나눠 조목조목 질타했다. “정책은 난무하나 결과는 전무해 허망하다”면서다. 이 청원은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청원을 숨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공개 처리 후 1일 오후까지 청원에 41만 명 넘게 참여했다.

시무 7조 등장 후 패러디 잇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시무7조'는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패러디가 양산되고 있다. 림태주 시인과 청원인 조은산(필명)씨는 공개 설전을 주고받았다. 또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疏)’를 자청한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사흉(四凶)’을 주벌하기를 청하는 소(疏)” “개혁의 길을 그르치지 마소서.〈권혁7조〉” 등이다. 특히 지난달 31일에는 조선시대 유생들의 상소인 ‘영남만인소’ 형식을 차용해 “조은산을 탄핵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막상 내용을 뜯어보니 제목과는 달리 정부 정책과 여권 인사들을 풍자해 주목받았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1만2000여명이 동의했다.

조씨 블로그에선 '댓글 전쟁' 

조씨의 ‘시무 7조’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그의 블로그에서는 또다른 ‘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조씨의 블로그에는 상소문 4개를 포함해 게시글 11개가 올라와 있다. 이중 조씨가 림 시인을 반격하며 올린 글에는 13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반응은 “울컥한다”며 동의하는 쪽과, “불편하다”며 반대하는 쪽으로 갈렸다. “대놓고 대자보질이네. 너도 속물”이라며 조씨를 공격하는 댓글에는 “내 눈엔 오히려 당신이 친문(친문재인) 같다” “글에 공감한다고 해서 야당 지지자가 아니다”라는 반박 댓글이 달렸다. 정치적 싸움으로 몰고 가지 말라는 뜻이다. 또 조씨를 비난한 한 댓글에는 “여론이 들끓는 게 진짜 민심이다. 선거 결과나 지지율이 반영 못 하는 진정한 민초의 목소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뜨겁다. “시무 7조는 사이다”라며 ‘조은산’이나 ‘시무 7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지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산다는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시무 7조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국민적 공감을 끌어낸 글”이라며 “단순히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SNS에 청원 동참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경남에 사는 한 30대 주부는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정부 정책에 불만 쌓였다 대리만족"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전문가들은 조씨의 글을 통해 정권에 쌓인 불만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무 7조로 인해 풍자와 패러디가 이어지는 건 언로가 그동안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익침해를 당했다 느껴도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무 7조가 나타난 것이다. 이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씨의 시무 7조를 계기로 그동안 주춤했던 정치적 비판이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무 7조는 적절한 풍자를 통해 정부의 약한 고리를 짚어내며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며 “임대차 관련법을 비판했던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처럼 건전한 정치적 비판이나 성숙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전까지는 회의감·좌절감·혐오 등으로 정치 코드가 설명됐으나, 시무 7조는 잠자던 정치적 DNA를 살려냈다”고 평가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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