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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바로 답안하면 '딴짓한다' 오해" 재택근무 시즌2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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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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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는 A 씨는 재택근무자끼리 화상회의를 할 때마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는다. 회의 참석자들 간 발언이 겹치면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먹통’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 회사는 14일 재택근무를 공식 재개했는데, 올해 상반기 때 겪은 재택근무(1차) 불편함 중 일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A 씨의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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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특히 업무와 관련한 알고리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그는 “그림으로 설명할 때 각자의 화면에 표시되는 화질 등이 달라서 그런지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종종 생긴다”고 전했다. 그는 “시중 뉴스에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 같은 IT 업종의 업무방식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얘기가 나오지만 이런 문제점 개선 없이 변화가 이뤄질 것 같진 않다”며 “실제론 ‘이 상황이 얼마나 더 가겠느냐’‘기다려보자’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 시간 만에 한 일, 5시간에 한 것처럼"

코로나19 일일 신규환자가 한때 400명을 넘으면서 각 회사가 ‘재택근무 시즌 2’를 시작한 뒤, 직장인들의 애환도 다시 나오고 있다. 한 건설사의 차장급 직원 B 씨는 “윗사람들이 ‘재택=휴식’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B 씨는 매일 본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목록으로 정리한 보고서를 써야 하는 게 가장 성가시다고 한다. 그는 “간부들 보는 앞에서 일할 땐 일에 진전이 없는 날이 있어도 열심히 한 모습을 보여주면 됐는데, 재택근무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며 “뭔가 원격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B 씨는 또 “한 시간이면 끝낼 일을 5시간에 걸쳐 한 것처럼 업무보고서를 그럴싸하게 만드는 동료들도 있다”며 “이건 또 다른 비효율 아닌가”라고 물었다.

재택근무 시행으로 한산해진 경기 판교의 한 상가. 연합뉴스

재택근무 시행으로 한산해진 경기 판교의 한 상가. 연합뉴스

‘재택근무 시즌 2’엔 삼성전자 등도 동참한다. 삼성전자는 9월 한 달간 희망자에 한해 시범적으로 재택근무를 운영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미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는 부서와 직종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확대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며 “다만 현장의 연구ㆍ기술직은 보안 문제 때문에 아직은 재택근무가 부적합하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택근무로 효율성이 올랐다는 의견도 있다. 한 통신회사 차장급 직원 C 씨는 “나는 개인별 프로젝트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며 “상급자에게 대면 보고할 일이 있을 때만 회사에 가는데, 이 역시 주어진 프로젝트에 대해 시한 안에만 진전 상황을 보고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OO일까지 무엇에 대한 대책 의견서를 내라’는 식의 상대적으로 책임이 명확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은 재택근무가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일하는 C 씨는 "1차 때는 ‘진짜 회사에 안 가도 되는 거냐’는 의심을 직원들이 했었다"며 "윗사람 눈치 때문에 ‘그래도 회사에 나가겠습니다’고 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C 씨는 “업무상 연락은 내부 전산망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기본 지침이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PC 앞을 떠날 수가 없다”며 “평소 사무실이었으면 잠시 자리를 비워도 서로 이해가 됐는데, 재택근무 상황에선 PC로 보낸 메시지에 즉각 대답하지 못하면 ‘딴짓 한다’는 평판을 받을까 걱정하는 문제는 있다”고 전했다.

추가 재택 가이드라인 9월에 나온다 

이처럼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상황에 대한 지원과 해결책 마련도 각 회사의 고민거리가 됐다. 이에 대해 지난 4월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 관련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구체적 내용을 보강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9월 추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노동법) 교수는 “정부 가이드라인은 모호해도 문제고 너무 구체적이면 ‘사안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며 “이 때문에 각 회사에서 자기 직종 특성에 맞는 재택근무 기준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하고, 그 내용을 법적으로도 인정해주는 절차가 상식으로 자리잡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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