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

중앙일보

입력

대부분의 환자들이 심장수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파요...!”
육순이 넘은 아주머니가 가슴이 아파서 입원을 하였습니다.
협심증으로 진단이 난 환자는 과거 여러 차례 내과적 치료를 받고도 재발을 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보호자들을 불러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수술 승낙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환자의 남편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의 말로는 그저 나이가 많으셔서 오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회진 시간에 환자는 저를 보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얼마나 위험한 수술이냐, 회복 시간은 얼마나 걸리느냐 갖가지 질문을 하더니 수술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환자가 별걸 다 신경쓰네요.” 하면서 저는 질문을 일축하였습니다.

그런나, 환자의 말로는 집안의 경제권을 본인이 다 갖고 있으니 꼭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환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이 감추고 있던 모든 일을 가족들에게 알려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심장수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부나 골절 등의 수술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인식이 잘 되어있는데 반하여, 뇌수술과 심장수술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수술과정이 매우 어렵고 그에 따르는 위험률도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어려운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위험한 질병이 있기 때문에 수술을 피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견딜만 하면 가능한 수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약이나 주사로 치료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됩니다.

맹장염같은 병은 당장 복통이 심하고 환자가 겉으로 느끼는 증세가 뚜렷하여 수술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이 수긍을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심장병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여 전적으로 의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영감은 지금 집에서 울고 있어요. 마누라 죽을까봐....”
아마도 영감님의 마음이 매우 여린가 봅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불러서 설명을 할 때도 영감님은 나타나지를 않은 것입니다.

사실 수술 자체보다도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쩌면 더 힘든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응급환자로 인해 정규 수술이 밀리기라도 하면 환자들이 실망하고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단 몇 시간을 연기하여도 환자들은 과민 반응을 보입니다.

그만큼 기다리는 초조함이 견디기 어렵다는 증거입니다. 대개 수술 날짜가 정해지면 수술에 대한 공포감으로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가능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면서 안심을 시켜드리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수술 전 날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던 환자는 자신의 감추었던 비밀 장부를 떠올리고, 내게 수술의 위험성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만일의 경우 자신의 재산을 가족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의료진들에게는 늘 하는 일이고 모든 과정을 다 알고 있기에 사실 공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그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심장 수술이 어렵고 위험하다는 자신들의 생각으로 수술 결정이 내려진 환자들은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저의 설명을 자세히 들은 환자는 비로소 식사를 하게 되었고, 잠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말 한마디로 환자의 평안을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저의 이런 역할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이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환자 한 사람을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회진을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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