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출신 스위스 의사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중앙일보

입력

스위스 국적의 한 의사가 일생을 집시의 권리증진에 헌신한 공로로 올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자신 스스로 슬로바키아 태생의 집시 출신이기도한 얀 시블라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국제축구연맹(FIFA)과 더불어 약 120명의 노벨평화상 추천후보에 포함됐다고 스위스국제방송이 11일 전했다.

음악가였던 부모가 문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읽기를 독려한 덕분에 브라티슬라바 대학에 진학, 의학을 전공한 시블라는 집시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행진을 주도하는 등 일찌감치 박해받는 집시들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시블라는 지난 68년 `프라하의 봄'이 소련에 의해 진압되자 스위스로 이주, 본격적인 집시인권보호 운동에 매진했다.

지난 73년부터 의사로 일하고 있는 시블라의 베른 자택은 오랫동안 자신이 창설을 주도한 세계집시연맹의 본부로 사용됐었다.

이 단체는 현재 유엔에 의해 옵서버 자격이 부여된 비정부기구(NGO)로 인정을 받고 있다.

시블라는 그동안 각국의 수반, 교황, 국제기구에 집시의 지위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호소하는 서신을 끊임없이 보냈으며 집시들의 처우에 관한 국제회의도 다수 개최했다.

특히 지난 85년에는 집시들이 불의에 맞서 스위스 도로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유엔과 스위스 정부에 의해 중재자로 초빙돼 해결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시블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집시연맹,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대학, 프라하 대학 철학과 교수진, 체코의 브르노 집시문화박물관, 인도의 집시학 연구소 등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받았다.

시블라는 전세계에 걸쳐 1천200만명 내지 1천500만명의 집시가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들중 상당수가 동유럽에 거주하고 있으나 특히 루마니아와 유고에서 집시에 대한 박해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집시문제는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자신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만으로도 집시사회에게는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집시관련 자료보관소를 개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후원자를 물색중에 있다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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