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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무모증 환자 이세혁씨 시집 출간

중앙일보

입력

'털없는 원숭이 한 마리/오늘도 방 구석에 처박혀 시를 쓰네…'

선천성 전신 무모(無毛)증이라는 희귀병의 외톨이 청년이 시인이 됐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한가닥의 털도 없이 21년을 살아온 고창호(高昌壕.서울 강서구 방화동)씨.

'이세혁' 이란 새 이름으로 다음달 『털없는 원숭이의 비가(悲歌)』 라는 첫 시집을 낸다.

열다섯살 때부터 틈틈이 써온 5백여편에는 장애 아닌 장애 때문에 겪은 회한이 구절구절 담겼다.

"평생 목욕탕엔 가보지도 못했지요. 속눈썹이 없어 눈 안에 먼지가 그대로 들어와 늘 안경을 쓰고 다녀요. "

그의 과거는 모진 서러움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가장 참기 어려운 건 사춘기 시절 학교에서 받은 따돌림이었지요. "

모자를 쓰고 다니면 "건방지다" 며 동급생이나 선배들로부터 매를 맞았고, 모자를 벗으면 "이상하다" 고 맞아야 했다. 끝내 그는 공고 1년 때인 1996년 학교를 그만뒀다.

"99년 간신히 어린이 컴퓨터학원 강사직을 얻어 가발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쳤지요. 하지만 가발에 눌린 머리 피부가 벗겨지고 곪아 그나마 그만둬야 했어요. "

그는 지금 7만원짜리 월세방에서 혼자 산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자취를 감췄고, 서울 구로구의 한 모자원에서 함께 살아온 어머니와 누나도 2~3년 전 차례로 가출했다.

그래도 그는 늘 웃는다.

"소외받는 사람을 위한 진솔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 겁니다. "
그는 지금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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