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양제츠 방한에 불안했던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마친 후 마스크를 벗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마친 후 마스크를 벗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가 북한지원 해달라며 중국편 쏠릴까 우려.. #볼턴 회고록에 나타난 외교행태 되풀이해선 안돼 #

1.
코로나 와중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그림자가 휙 지나갔습니다.
중국 외교정책 최고책임자인 양제츠 정치국원이 지난 주말 1박2일로 부산을 다녀갔습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6시간 만났습니다.

2.
회담장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외교적으로 ‘좋은 대화’란 ‘별 성과가 없다’는 얘기를 에둘러 표현한다고 합니다. 혹 성급한 합의가 있을까 우려했기에 ‘구체적 성과 없음’에 오히려 안도했습니다.
양국의 발표는 서로 비슷하지만 달랐습니다. 다르게 발표한다는데 서로 동의한 셈이죠. 영어로 ‘Agree to disagree’.

3.
우리 정부의 제1 방점은 ‘코로나가 안정되는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에 중국은 ‘고위층 교류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뉘앙스가 다르죠. 우리측이 주석의 방한을 희망했고, 중국은 확답을 않았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우리 정부의 제2 방점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협력해달라’입니다. 북한을 많이 설득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남북이 관계를 개선발전하고 화해 협력을 추진하는데 지지한다. 관련 각국이 건설적 역할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우리측 요청에 중국은 그냥 원칙만 되풀이한 셈입니다.

4.
반대로 중국정부의 제1 방점은 ‘신형국제관계에 따라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를 원한다’입니다. ‘신형국제관계’는 시진핑 주석의 대외정책을 집약한 용어입니다. 쉽게말해 국제경제측면에서 (미국편이 아니라) 중국편이 되어달라는 얘기입니다.

제2 방점은 ‘미중 관계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입니다. 최근 홍콩,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과 대립중인 상황에서 중국편을 들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 중국 양국의 공영과 우호협력 관계가 세계평화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잘 지내면 좋겠다’는 원칙론을 얘기함으로써 완곡하게 ‘한쪽 편들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달한 셈이죠.

5.
이 정도면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됩니다. 양국 외교안보 책임자의 상견례로는 무난해 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너무 중국편들기로 약속할까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보인 태도와 문재인 정부가 지난 3년간 보인 행적 때문입니다.

이인영 장관은 최근 미국대사를 만나 ‘한미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제약한다’면서 ‘기능을 재조정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지원을 위해 현재 한미관계의 기본틀을 흔들겠다는 일방적 발상입니다. 미국대사는 ‘워킹그룹에 문제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장관은 이어 중국대사를 만나 ‘남북관계 진전에 건설적으로 협력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중국대사는 ‘같이 노력하겠다’며 반색했죠.

6.
현정부가 지난 3년간 보여온 북한관련 행보는 매우 성급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듭니다.
뭔가 삐그덕 거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왔는데, 그 이면을 잘 설명해준 것이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입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현정부는 김정은과 트럼프에게 정상회담을 주선하면서 너무 무리해 결과적으로 양쪽의 불신만 산 꼴입니다. 김정은에겐 영변핵만 포기해도 트럼프가 제재를 해제할듯 얘기했고, 트럼프에겐 김정은이 당장 비핵화를 할듯 얘기했죠.
물론 청와대는 볼턴의 회고록이 왜곡 투성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메모광이라는 볼턴의 회고록은 매우 구체적이며 앞뒤가 맞아떨어집니다.

7.
현정부가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정권초기와 비교해 최근 국제정세는 훨씬 엄중합니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7월 23일 닉슨 도서관에서 한 연설은 닉슨 대통령의 미중 국교정상화(1972년) 이후 50년만의 대반전 선언입니다.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를 악용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다룰 때 ‘믿으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말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을 다룰 때는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고 나는 말한다.’

서늘합니다. 미국은 느려 보이지만 한번 바뀌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입장변화가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겁니다.
정권핵심 586의 낭만적 통일관도 빨리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