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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효리는 살아있는 중국권력을 건드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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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대형 초상화가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행사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경진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대형 초상화가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행사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경진 기자]

[오병상의 코멘터리] #이효리 예능에서 '마오' 언급.. 중국인 댓글폭탄 #사실은 마오쩌뚱이 아니라 시진핑까지 건드린 셈

1.
오늘(25일) 코로나 다음으로 가장 핫한 뉴스는 이효리 같네요.
가수 이효리가 지난 금요일 방송(MBC 놀면뭐하니 시리즈 중 ‘환불원정대’편)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은 새 이름(부캐. 부차적인 캐릭터란 뜻)으로 ‘마오’를 거명했습니다. ‘글로벌하게, 중국 이름 마오로 하면 어때’라고 했죠.

부캐라는 개념부터 사실 심각하진 않습니다. 이전 시리즈 ‘싹쓰리’에서 효리의 부캐는 린다G였죠. ‘지(G)린다’란 젊은이들 속어로 ‘엄청나다’‘멋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부에선 ‘찔끔 오줌을 지릴 정도로 충격적이다’는 의미라고 풀이를 합니다. 그냥 재미니까.

당연히 효리는 마오를 중국의 국부 마오쩌뚱으로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냥 시크한 중국 이름 느낌 정도..

2.
그러나 중국인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일제히 효리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어찌 감히 중국의 위인 이름을..’이란 분노입니다. 효리의 인스타그램을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도배했습니다. (요즘 연예인들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서 팬들과 소통합니다.)
이에 격분한 한국 네티즌들이 ‘마오가 뭐길래 난리냐’며 반박하는 댓글을 올리기 시작해 난장판이 됐습니다.

3.
결국 24일 MBC가 ‘오해였다’며 중국 네티즌들에게 사과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 다시보기에서 효리 부분을 통째로 들어냈습니다.

그래도 중국 네티즌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네티즌들은 더 화가 났습니다. MBC에 ‘왜 사과하나’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4.
효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내뱉었지만 사실은 엄청난 폭탄을 건드렸습니다.
마오쩌뚱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과거 덩샤오핑이나 장쯔민 시절과는 천지차이라는 사정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마오쩌뚱은 중국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이끌고 오늘의 중국을 만든 영웅입니다. 살아 생전 신격화됐습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과 같은 대혼란을 초래해 수백만의 목숨을 잃게했음에도 불구하고 1976년 숨질 때까지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죠.

마오가 숨진 다음 권력을 쟁취한 덩샤오핑은 마오에 대해 ‘공7 과3’(잘한 게 70%, 못한 게 30%)이라며 조심스럽게 평가했습니다.
그나마 과오를 30%나 인정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변화였죠. 이후 마오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런 정도, 신격화와는 먼 평가를 해왔습니다.

5.
마오가 다시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은 다분히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정치적 부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시 주석은 ‘제2의 마오’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오 사후 오늘의 중국을 설계한 덩샤오핑은 ‘국가주석 10년 임기제한’을 두었습니다. 시 주석은 그 제한을 없앴습니다.
2017년 당대회에서‘당이 통치한다’는 마오의 어록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지도사상을 당헌에 명시합니다. 마오와 같은 위상을 확보한 셈입니다.

6.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런 시진핑의 ‘위대한 중국몽(꿈)’을 지지합니다.
중국몽은 간단히 말하자면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까지 중국인들이 모두 잘사는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고, 이어 건국 100주년(2049년)까지 세계적 패권을 쥔다는 의미입니다.

중화민족주의를 가슴 깊이 간직한 중국인 누가 이런 꿈을 싫다고 하겠습니까.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급성장해왔기에 믿을만하기도 합니다.

시 주석의 큰 꿈은 마오의 발자취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오는 신의 경지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뒤이어 시진핑이 중국몽의 실현을 선언하면서 신선계로 발을 들여놓으려 할 것입니다.

7.
이런 상황에서 효리가 마오를 건드린 겁니다. 그래서 중국의 트위터인 웨이보에 효리를 욕하는 글이 수억 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검열에 엄격한 중국 정부가 적당히 허용해주는 분위기입니다.

효리는 마오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 시진핑을 건드린 것입니다. 웃자고 한 얘기가 중국의 야심을 들추고 말았네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