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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딸 앞세우고 찾아간 10대 아이돌의 생일 카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44)

대략 3개월 정도인 것 같다. 중학생 딸 아이의 팬심이 바뀌는 기간 말이다. 한동안 ‘미스터 트롯’의 톱 세븐 중 한 명의 가수에게 빠져, 음원이 새로 출시되는 대로 다운받아 소장하고 방송이나 유튜브에 뜬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SNS 프로필로 사용하는 등 혼자만의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더니 몇 주 전부터는 한 아이돌 그룹을 덕질하기 시작했다.

“엄마, 멤버들 이름 외었어? 아직도 모른다고? 수빈, 연준, 범규, 태현, 휴닝카이잖아. 이리 와봐. 이번에 올라온 댄스 연습 영상 같이 보자. 정말 잘 추지 않아?”

딸 아이가 새로운 누군가에 관심을 가지고 팬심을 키울 때마다 나와 남편은 그 스타의 프로필, 출연작, 디스코그라피, 시그니처 댄스까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좋아하는 스타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가능한 집중해 듣고 기억하고 대답해 주려 한다. 드라마를 본 후 배우에 빠져 있던 올해 초에는 그 배우의 필모그라피와 상대역과의 케미까지 이야기를 나눴었다.

‘무슨 팬이 이렇게 마음을 금방 바꾸냐, ‘금사빠’ 아니냐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지만, 관심사가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나이인지라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힙합 뮤지션을 좋아했던 작년에는 국내 힙합 신의 계보와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와 소속사, 활동 내용을 줄줄 외웠고,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에 몰두했을 때에는 시즌을 거슬러 다시보기를 반복하며 의학 용어를 섭렵했다. 트로트 뮤지션의 팬임을 자처했을 때에는 남진, 나훈아 세대의 트로트부터 미스터 트롯 출연자의 신규 발매 음원까지 매일 흥얼거리고 다녔고, 지금은 아이돌 그룹의 탄생과 아이돌 산업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팬심이 옮겨가면서 대중문화 신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확장성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전영록의 팬이었다. 영화가 개봉하면 어떻게든 극장에 가려고 했고, 그의 노래가 ‘가요톱10’ 순위에 진입하는 주에는 방송 시작 전부터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영화 돌아이 포스터]

중학교 시절 나는 전영록의 팬이었다. 영화가 개봉하면 어떻게든 극장에 가려고 했고, 그의 노래가 ‘가요톱10’ 순위에 진입하는 주에는 방송 시작 전부터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영화 돌아이 포스터]

돌이켜보니 나도 그렇게 성장했다. 중학교 시절 당대의 아이돌 가수인 전영록의 팬이었던 나는 그의 음반이 출시될 때마다 카세트테이프라도 구매하려고 했고, 브로마이드와 에세이집 등이 출간되면 용돈을 다 털어 사 모았다. 영화가 개봉하면 어떻게든 극장에 가려고 했고, 그의 노래가 ‘가요톱10’ 순위에 진입하는 주에는 방송 시작 전부터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팬심은 조용필, 임범수 등 자연스럽게 당대의 가수를 망라하며 음악을 듣는 기회가 되었고, 나만의 음악 취향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배우 강수연을 좋아했다. ‘철수와 미미’ 시리즈부터 ‘아제아제 바라아제’까지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섭렵했다. 『스크린』과 『로드쇼』에 실린 그녀의 기사를 스크랩해두었는데, 이런 과정에서 한국 영화와 해외 영화의 배우, 감독 등 영화 관련 정보를 익힐 수 있었다. 그다음은 전인권이 리더로 활동한 ‘들국화’ 였는데 한동안 국내 그룹사운드 음악에 몰두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1960년대 히피 문화에 빠져 도어스와 짐모리슨의 음악을 쉴새 없이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파리를 방문할 때마다 짐모리슨이 묻혀 있는 페르라셰즈에 들르는 건 팬심으로 시작한 루틴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대상이 달라짐에 따라 다양한 문화 장르를 접할 수 있었고, 시대와 문화, 아티스트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현실의 답답함이나 공허함을 잊을 만큼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바꿔 가며 팬심을 키우고 있는 딸 아이 역시 지금은 그런 즐거움을 쫓는 중일 게다.

’엄마! 휴닝카이가 이번 주 생일이거든. 그래서 성신여대 앞 극장의 한 관이 임시로 휴닝카이관으로 꾸며졌다는데! 나 거기 가서 영화 봐도 되나? 같이 가자 우리.“ [사진 김현주]

’엄마! 휴닝카이가 이번 주 생일이거든. 그래서 성신여대 앞 극장의 한 관이 임시로 휴닝카이관으로 꾸며졌다는데! 나 거기 가서 영화 봐도 되나? 같이 가자 우리.“ [사진 김현주]

“엄마! 휴닝카이가 이번 주 생일이거든. 그래서 성신여대 앞 극장의 한 관이 임시로 휴닝카이관으로 꾸며졌다는데! 나 거기 가서 영화 봐도 되나? 같이 가자 우리.”
“그 관에서 하는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라면서. 안 되겠네.”
“그럼, 생일카페에 가보고 싶은데, 그건 어때?”
“생일카페?”

스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스타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스타의 사진을 나눠주는 작은 이벤트 공간이 있다는 거다. 카페를 하나 정해 스타의 생일 앞뒤로 일정 기간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마침 그 카페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딸 아이의 바람도 무시할 수 없고, 요즘 십 대의 아이돌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는지도 궁금했기에 주말 저녁 아이를 앞세워 남편과 함께 생일카페로 나섰다.

마음먹고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대학가 앞 작은 카페. 문 앞에 도착한 딸 아이는 나이 많은 부모와 같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쑥스러운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와, 이런 곳이 다 있네. 엄마는 너무 궁금하다. 얼른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 한 잔씩 마시면서 구경하자”며 딸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조용히 카페 안을 둘러 보았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생일을 맞은 스타의 사진이 구석구석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고, 포토존도 마련되었다. 카운터에 주문하며 카페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 지긋한 부모와 함께 온 중학생 팬이 귀여워보였는지, 카페 매니저는 스타의 얼굴 사진이 담긴 종이컵 홀더와 작은 사진을 넉넉하게 챙겨 주었다. 사진 김현주]

나이 지긋한 부모와 함께 온 중학생 팬이 귀여워보였는지, 카페 매니저는 스타의 얼굴 사진이 담긴 종이컵 홀더와 작은 사진을 넉넉하게 챙겨 주었다. 사진 김현주]

“이곳에서 스타 생일 이벤트를 종종 하나 봐요. 저도 우리 애가 좋아하는 가수 생일 카페라고 해서 와봤어요.”
“어머, 그러세요? 기념품 좀 드릴게요.”

나이 지긋한 부모와 함께 온 중학생 팬이 귀여워 보였는지, 카페 매니저는 스타의 얼굴 사진이 담긴 종이컵 홀더와 작은 사진을 넉넉하게 챙겨 주었다. 선물을 받자마자 딸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핀 것은 물론이다. 기분이 좋아진 딸은 자기 프로필 사진을 바꿀 거라며 카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딸 아이를 기다리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당신도 사춘기 때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을 텐데, 누구야?”
“글쎄,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그래도 찾아보던 대상이 있었을 텐데?”
“아, 있네! 초등학교 때였는데, ‘소나기’라는 영화를 봤거든. 단체관람이었는지, TV로 봤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그때 그 영화 속 주인공 연이로 나온 배우! 그 배우가 참 좋았었어. 그 당시에. 꿈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하.”

황순원의 ‘소나기’의 스토리가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소년은 그 이후 손에 잡히는 대로 온갖 소설과 문집을 찾아 읽었고, 그렇게 사춘기를 보낸 후 국문과에 진학했다. 사춘기 딸 아이의 아이돌이 어떻게 변하고 진화할지 지켜보는 시간이 흥미로울 것 같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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