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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가족사' 꺼낸 질 바이든 "남편, 그때처럼 美 일으킬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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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올해 69세인 질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은 마라톤을 즐긴다. [EPA=연합뉴스]

올해 69세인 질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은 마라톤을 즐긴다. [EPA=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8년간 세컨드레이디(부통령 부인)를 지낸 질 바이든(69)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를 향한 도전에 나섰다. 그는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인 18일(현지시간) 마지막 연설자로 나서 남편 바이든만이 감염병과 경기 침체, 분열로 점철된 미국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전대 둘째날 퍼스트레이디 후보 연설 #"분열된 미국 회복시킬 사람은 바이든" #231년 만에 본업 가진 영부인 나올 수도 #무대 난입 시위자 제압, 보디가드 역할도

질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은 전당대회 둘째 날인 18일(현지시간)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장소는 1990년대 초반 그가 가르쳤던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학교다. [AFP=연합뉴스]

질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은 전당대회 둘째 날인 18일(현지시간)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장소는 1990년대 초반 그가 가르쳤던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학교다. [AFP=연합뉴스]

1990년대 초반 자신이 영어를 가르쳤던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학교를 연설 장소로 택했다. 그는 “교실은 조용하고 운동장은 고요하다”면서 대면 수업을 재개하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를 지적했다.

가정에서의 남편 모습을 상세히 그리며 바이든이 미국을 치유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질 여사는 “망가진 가족을 어떻게 온전하게 바꿀까요”라고 물은 뒤 “한 나라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과 방법이 같다. 사랑과 이해, 작은 친절, 용기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망가진 가족'의 아픈 과거사를 담담하게 말했다. 바이든은 1972년 최연소 상원의원에 당선된 다음 달 교통사고로 첫 아내와 한 살짜리 딸을 잃었다. 2015년에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장남 보를 뇌암으로 떠나보냈다. 질 여사는 바이든이 가족의 어려움을 극복했듯이 강한 회복 탄력성을 바탕으로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이든은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싱글대디로 5년을 지낸 뒤 결혼했다. 질은 두 아들과 먼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이 순탄하게 이뤄지진 않았다. 바이든은 사전 녹화된 영상에서 “어느 날 두 아들이 와서 ‘아빠, 이제 우리가 질과 결혼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섯 번이나 청혼했는데 거절당했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질 바이든. 두 사람은 1977년 각자 두 번째 결혼으로 맺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질 바이든. 두 사람은 1977년 각자 두 번째 결혼으로 맺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질 여사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아이들이 다시 이별을 경험하지 않게 하려면 내가 이 결혼에 대해 100% 확신이 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질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다.

1977년 네 사람은 마침내 한 가족이 됐다. 장남 보는 생전에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다시 일으켰다”고 말할 정도로 질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두 아들은 질 여사를 의붓어머니 대신 '맘(Mom)'으로 불렀다. 이 집에서 친엄마는 '마미(Mommy)'로 불렸다.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질 여사는 미국에 없던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상을 정립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학 박사인 그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민자와 난민 등 소외계층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전업 교수다. 세컨드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는 8년 내내 교수직을 병행할 정도로 애착이 크다.

지금은 선거운동을 하느라 휴직 중인 그는 퍼스트레이디가 되면 전업 교수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231년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퍼스트레이디가 직업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전통적인 내조에서 벗어나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퍼스트레이디의 탄생이 예상되면서 질 여사의 최근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는 남편 바이든의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CNN에 따르면 바이든이 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후보군을 20명에서 11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에 질 여사의 의견이 반영됐다. 일부 후보자는 그와 화상 면접을 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최종 낙점했다는 소식도 질 여사가 당내 부통령 선정위원회에 통보했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남편의 참모 역할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결혼은 서로의 말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답해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CNN 인터뷰에서도 "배우자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참모가 되길 바라지 않나요. 그게 결혼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남편 바이든도 CBS 인터뷰에서 "질이 나를 도와주는 것 중에서 내 주변 사람 가운데 누가 나와 가장 잘 맞을지 알아내는 것을 가장 잘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바이든 건강이 나빠질 경우 질 여사가 막후 실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에선 나온다.

질 여사는 대선 캠프 내 교육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참가하기도 했다. 퍼스트레이디가 되면 커뮤니티 칼리지 무상 교육, 암 연구 기금 증액, 군인 가족 지원 등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델라웨어대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잠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56세 때인 2007년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질 여사는 올해 77세인 바이든보다 9살 아래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 후보인 바이든의 건강 문제가 자주 이슈가 되면서 질 여사의 역할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는 남편의 보디가드 역할까지 자처했다. 지난 3월 14개 주 경선이 한꺼번에 열린 ‘슈퍼 화요일’에서 승리한 바이든이 로스앤젤레스 집회에서 소감을 밝힐 때 시위자들이 연단 위로 뛰어들었다. 질 여사는 “빛의 속도로” 시위자 손목을 낚아채 밀쳐냈다고 WP가 전했다.

2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전날 열린 집회에서는 시위자가 남편을 향해 돌진하자 질 여사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튀어 올라 그를 바로 막아서기도 했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여동생에게 벌레를 던지며 괴롭히는 남자애가 있었다. 그의 집에 찾아가 노크한 뒤 문이 열리자 주먹을 날려 얼굴을 때렸다. 다시는 내 동생에게 벌레를 던지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소개했다.

세컨드레이디 시절 에어포스 투(부통령 전용기)에 남들보다 먼저 도착한 날 좌석 위 짐칸에 몸을 숨겼다. 직원들이 탑승해 짐칸을 열었을 때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했는데, 모두 한 30분가량 웃었다고 전했다.

질 여사는 2015년 미국 세컨드레이디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여성 권익 문제를 부각하기 위한 아시아 3국 순방(한국-베트남-라오스)의 첫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여성들과 교육 및 경력단절 문제로 의견을 교환했다.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동행하지 않고 부인만 방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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