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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때리니 공 돌려주네?…잘못된 보상 탓 더 센 ‘반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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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호 22면

[아이 마음 다이어리] 적대적 반항장애

지친 표정의 엄마가 진료실로 터벅터벅 들어왔다. 아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보통 엄마들은 진료실에 들어올 때 아이를 앞세우거나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온다. 아이보다 먼저 들어와 의자에 앉는 엄마의 모습이 어색했다. 나는 엄마가 대기실에서 작성한 기초설문지를 빠르게 훑어봤다. [자녀에 대해 상담하고 싶은 내용은?] 문항에 ‘매사에 반항적이고 어른에게 대든다. 친구나 동생을 때림. 자주 화내고 남 탓을 많이 함’이라고 적혀있었다.

100명 아이들 중 3~4명 발생 #영아기부터 까다로운 기질 보여 #부모 양육도 미숙한 경우 많아 #반항 성공 경험이 문제 행동 강화 #악순환 고리 끊는 게 치료 출발점 #지시는 단호하고 단순 명료하게 #작은 실수 넘어가고 칭찬 잘해야

일상생활 기능의 손상 수반하는 행동 장애

일러스트=전유리 joe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oen.yuri1@joins.com

수호(가명)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는 표정이 거의 없는 얼굴이었지만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있었다. 내가 설문지를 읽는 동안 수호가 호주머니에서 작은 탱탱 볼을 꺼내더니 통통 튕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수호의 공을 거칠게 빼앗았다. 수호는 옆에서 엄마를 한참 째려보더니 주먹으로 엄마의 팔꿈치 위를 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엄마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거 보세요. 선생님. 제가 여기 왜 왔는지 아시겠죠?” 엄마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는 공을 던지듯 돌려주며 “엄마 아프다고. 제발 그만해!”라고 소리 질렀다. 수호는 공을 돌려준 엄마를 계속 째려보며 “빨리 사과해. 갑자기 뺏어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엄마에게 소리쳤다. “돌려줬으면 됐잖아. 왜 여기서까지 이걸 튕기고 난리니 너는. 대체 엄마가 널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니?” 엄마가 말했다.

나는 수분 사이에 벌어진 광경을 지켜보다 엄마와 아들을 일단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수호 어머님 죄송하지만 잠시 밖에 계시겠어요? 제가 수호와 먼저 이야기를 나눈 후 어머님 다시 뵐게요.”

엄마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나갔다.

“수호야, 엄마한테 뭐가 제일 화가 났어?” “몰라요.” “그럼 엄마는 왜 때렸어?” “엄마가 내 말을 안 들으니까요.”

“아 그게 무슨 뜻이지?” “맨날 자기 마음대로만 해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아, 엄마가 네 의견을 묻지 않고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엄마는 제가 왜 그러는지 관심도 없어요.”

수호는 처음에는 “몰라요”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다가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은 사랑하지 않고 여동생만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수호는 자신이 친구를 때리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다 엄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수호가 나가고 엄마가 들어왔다. 수호는 유치원 시절 반 친구를 때리고 선생님께 자주 대들어 원을 두세 차례 옮겼다고 한다. 아기 때부터 기질이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수호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수호 아빠는 해외 출장이 잦아 양육 부담은 엄마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엄마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예민하고 고집이 센 수호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내는 짜증을 다 받아주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폭발을 하며 “너 그럴 거면 밥 먹지 마. 집에서 나가!”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나는 수호의 여동생에 관해 물었다. 엄마는 여동생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환해졌다. “솔직히 수호 키울 때는 힘들기만 했지 예쁘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둘째 키우면서는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쁘던지. 둘째는 눈치도 빠르고 애교도 많고요. 그런데 수호가 어린 여동생을 밀치고 때리면 애가 너무 미워요.” 엄마는 여동생을 편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수호는 ‘적대적 반항 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로 진단됐다. ‘적대적 반항 장애’는 ▶자주 흥분하고 쉽게 화내기▶따지기 좋아하고 규칙을 거부하기▶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악의적이고 보복적인 태도 등의 증상을 보인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00명의 아이 중 발생 비율은 3~4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두세 살 아이의 떼쓰기나 청소년 사춘기 반항은 정상적인 모습이지만, 적대적 반항 장애는 동일 연령 아이들보다 정도가 심하고 지속적이며 일상생활 기능의 손상을 수반하는 행동 장애이므로 잘 구분해야 한다.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진단 기준

- 아래 증상들 중 4개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화난 기분이나 자극 과민성
(1) 자주 흥분을 한다.
(2) 자주 과민하여 쉽게 짜증을 낸다.
(3) 자주 화를 내고 분개한다.
*따지기 좋아하고 반항적인 행동
(4) 자주 권위대상(아동청소년의 경우 어른)에게 따지는 행동을 한다.
(5) 자주 적극적으로 반항하거나, 권위대상의 요구나 규칙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6) 자주 의도적으로 타인을 짜증나게 한다.
(7) 자신의 실수나 비행을 타인의 잘못으로 비난한다.
*보복성
(8) 6개월 동안 적어도 2회 이상 악의적이며 보복적인 태도를 보인다.
※ 심각도(증상발생 장소의 개수에 따라)
1개-경도, 최소 2개-중등도, 3개 이상-고도

적대적 반항 장애가 되는 어떤 아동들은 영아기부터 엄마와 갈등을 유발하는 까다로운 기질을 보인다. 기질은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을 말한다. 아기의 활동 수준, 자극에 대한 반응, 생활 습관의 규칙성 등이 해당한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수면이나 섭식과 같은 생리적 현상이 규칙적이지 않아 엄마가 아이와 리듬 맞추기가 꽤 어렵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인내심이 어지간히 좋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나기가 쉽고 부부간의 다툼도 생기는 경우가 많다.

수호의 경우 아이를 돌보느라 시달리고 지친 엄마와 잦은 출장으로 가끔만 아이를 보는 아빠 사이에 관점이 달랐다. 수호 아빠는 아이들은 어릴 때 반항도 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인데 엄마가 과민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엄마가 수호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며 아내를 비난했다. 수호 엄마는 늘 반항하는 수호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해 분노와 무력감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러셀 바클리 박사는 저서에서 반항적인 아동의 부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반항적인 아동의 부모는 심한 불화, 경제적 어려움, 건강문제, 개인적 스트레스 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일관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통제적이거나 허용적이다. 자녀의 행동을 적절히 감독하지 않으며 부모 또한 미숙하고 신경질적이다. 그런 부모에 의해 양육된 까다로운 기질의 자녀가 적대적 반항 장애 증상을 보이기 쉽다.” 나는 수호 부모에게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이유란 명시적이거나 의식적인 이유가 아니다. 과거에 아이가 그 문제 행동을 통해 긍정적 결과나 보상을 경험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예컨대, 반항 행동을 함으로써 하기 싫은 일(잔심부름이나 숙제하기)로부터 도피했던 경험이 반항 행동을 늘리게 한다. 반항 행동을 통해 회피에 항상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몇 번 성공한 경험만으로도 반항 행동은 강화된다. 따라서 치료는 이 악순환의 강화 고리를 끊는 것에서 시작한다.

수호가 진료실에서 공을 튕기다 뺏긴 후 엄마에게 보였던 공격적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엄마를 때리는 행동을 한 수호에게 다시 공을 되돌려줌으로써 수호의 공격 행동은 강화됐다. 아마 가정에서 유사한 상호작용이 수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반항적이고 공격적 행동을 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경험이 꽤 많았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이렇게 대처할까? 수호 엄마는 우울증과 무기력감으로 아이를 훈육할 에너지가 고갈됐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폭발하듯 화를 내다가도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면 견디지 못하고 허용하는 식의 태도를 가끔 취해왔다. 수호는 심리 놀이치료와 행동치료를 받았다. 엄마에게는 우울증 치료를 했고 부부치료도 병행했다.

부모들도 불화·경제난 등 겪는 경우 많아

부모는 수호에게 효과적으로 지시하고 훈육하는 법을 교육받았다. 아이에게 지시할 때 지시 내용은 직접적이고 단순 명료해야 한다. 지시하는 말투는 아이가 중대함을 느끼도록 단호해야 한다. 또한, 아이의 눈을 반드시 맞추며 지시를 내리고 사전에 TV 등의 방해물은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평소에 부모가 아이의 사소한 잘못을 지적하는 데 힘을 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아이는 늘 지적받는다고 느껴 진짜 중요한 사안에 대한 부모의 지시를 중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실수들에는 너그럽게 넘어가면서 아이의 긍정적 행동에 더 관심을 쏟고 칭찬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훈육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아이가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효과적 지시법이 작동한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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