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다이어리

틱 장애 동반 ‘뇌 딸국질’…강박 대상에 악당 이름 붙이게 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2020.07.25 00:21

업데이트 2020.08.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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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24면

아이 마음 다이어리 <5> 강박장애

“Quarantine(격리). Q, U, A, R, A, N, T, I, N, E. quarantine. 콜레라 알지? 발진티푸스 알지? 감염 안 되게 항상 깨끗해야 돼. 너는 안전하지 않아.”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 반복
청결 집착·숫자 외우기 등 다양

강박장애에 캐릭터 별명 붙이고
증상 땐 그 녀석과 맞서게 해야
‘놀다 가렴’ 무시하는 혼잣말 효과

영화 ‘에비에이터’의 첫 장면에서 엄마가 어린 아들의 몸을 꼼꼼하게 목욕시키며 하는 대사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 영화산업과 항공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실존 인물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다. 성인이 된 하워드는 개인 비누를 가지고 다니며 피가 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손을 씻는다. 씻은 뒤 화장실 문고리를 잡지 못해서 열지 못한 채 망설이다 누가 열고 들어오는 순간을 이용해 재빨리 나간다. 영화는 젊은 백만장자 하워드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감염 예방과 청결에 대해 강한 주입을 받으며 성장하다 20대가 되어 대표적인 강박장애 증상을 보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실체 없는 불안, 알면서도 못 벗어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주인공 멜빈은 강박장애 증상을 보인다. 그는 식당에서 항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개인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식사한다. [중앙포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주인공 멜빈은 강박장애 증상을 보인다. 그는 식당에서 항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개인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식사한다. [중앙포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도입부도 주인공 멜빈의 강박장애 증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현관문을 닫을 때 다섯 번까지 세며 잠그고 불 스위치도 다섯 번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세면대에서 새 비누를 꺼내 매우 뜨거운 물로 손을 씻은 후 바로 비누를 버린다. 식당에서 항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개인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식사한다. 로맨스 소설 작가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게 매사에 규칙적이고 완고한 멜빈을 주변 사람들은 꺼린다. 강박장애란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반복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생각, 충동 또는 이미지와 같은 강박사고(obsession)와 그로 유발된 불안을 줄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강박행동(compulsion)을 한다.

영화 속 하워드나 멜빈이 보였던 오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청결에 집착하는 행동, 문이나 가스 불을 잠갔는지를 반복적으로 점검하는 행동 등이 있다. 숫자 세기나 단어 외우기 같은 증상도 흔하다. 금기시되는 성적인 생각과 공격적인 환상이 떠올라 이를 떨치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반복 행동이 스스로 부적절하고 지나치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증상을 반복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가족 및 대인관계에 상당한 지장이 생기는 경우에 강박장애를 진단한다. 100명당 약 2명 정도 발생하고 대체로 소아청소년기부터 증상이 시작된다. 여성은 성인기 발생이 약간 더 많고 남성의 경우 아동기에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소아정신과를 방문하는 강박장애 아이 중에 순수하게 강박장애만 지닌 아이들은 흔치 않다. 유치원 시절부터 분리 불안 장애를 보였던 아이, 눈을 자주 깜박이고 반복적인 소리를 내는 틱 증상이나 집중력 문제를 동반한 아이 등 공존 문제가 다양하다. 강박장애는 왜 생길까? 대표적인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 시스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 강박장애에 비해 아동기에 시작된 강박장애는 틱 장애를 더 많이 동반한다. 따라서 틱 장애의 원인으로 알려진 도파민 신경회로가 관여한다는 가설도 있다. 강박장애 역시 다른 정신장애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영향이 커서 가족 내 유사한 불안 증상이나 강박증상을 지닌 구성원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영화 속 하워드 엄마가 청결과 감염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묘사된 장면은 하워드가 유전적 영향도 받았음을 암시한다.

10여 년 전 지범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에 잘 가지 않으려 한다며 부모 손에 이끌려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부모는 지범이가 매사에 걱정이 많고 가리는 것이 많다고 했다. 어떤 것들을 가리는지 묻자 쇠로 된 수저로 밥을 먹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지범아, 쇠수저로 밥을 먹기 힘들어?” 나는 물었다.

“네…” 지범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쇠수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쇳가루가 밥에 떨어질 것 같아요”

“실제 쇳가루가 떨어지는 걸 봤어?” 나의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안 그러는 거 아는데요, 꼭 떨어질 것만 같아요.”

그래서 지범이네 식탁에는 매번 플라스틱 수저와 나무젓가락이 놓였다. 나는 지범이에게 다른 증상들은 없는지 더 탐색해 보았다. 아동용 ‘예일-브라운 강박장애 척도’도 시행했다. 지범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쇠로 된 수저뿐이 아니었다. 마시는 컵도 불투명해야 한다. 컵 안에서 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힘들어했다. 학교 급식 시간의 스테인리스 식판과 수저, 투명 물컵을 견디지 못해 점심 전 조퇴가 잦아지더니 결국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유치원 가기 전 “엄마 나 데리러 올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확인했고 다녀와서 엄마가 오른쪽 볼에 뽀뽀하면 왼쪽 볼에도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칭성에 대한 강박도 아동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이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점차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남아있었다. 쓰기를 할 때 글자 양쪽이 반드시 대칭되도록 쓰느라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려 제시간에 글쓰기를 마치는 경우가 없었다.

코로나 예방과 위생 강박 구분해야

일러스트=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일러스트=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지범이처럼 어린 강박장애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치료보다는 인지행동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증상이 심각하여 합병증이 많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강박장애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인지행동치료는 노출 및 반응방지 기법이다. ‘노출’ 기법이란 두려운 자극에 적절히 노출하는 과정을 반복해 궁극적으로는 불안을 줄이는 행동이론에 기반한다. 쇳가루가 떨어질 것 같아 쇠수저를 피하는 아동에게 쇠수저를 사용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노출’이다. 동시에 노출에 따른 불안을 이기지 못해 쇠수저를 피하고 플라스틱 수저를 찾는 행동을 못 하게 하는 ‘반응방지’를 한다.

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진단기준
A 강박 사고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사고, 충동 또는 심상이 때로 침투적이고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대부분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을 유발한다. 강박 행동은 손 씻기나 정리정돈, 확인하기와 같은 반복적 행동과 기도하기, 숫자 세기 등 심리 내적 행위를 강박 사고에 대한 반응으로 수행한다.

B 강박 사고나 강박 행동이 시간을 소모하게 해 사회적·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소아청소년 강박장애 치료의 대가인 듀크대학 존 마치 박사는 아이와 부모에게 강박장애를 ‘뇌 딸국질’로 비유해 설명한다. ‘뇌 딸국질’로 묘사되는 강박장애가 아이의 다른 뇌 기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강조하고 증상을 아이로부터 분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존 마치 박사는 ‘강박장애’에다 ‘아이가 물리치고 싶은 특정 나쁜 대상’으로 별명을 붙이게 한 후 노출 시에 그 별명과 싸우게 한다. 어떤 아이는 강박장애에다 자신이 반에서 가장 싫어하는 친구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만화 속 악당 캐릭터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노출’ 시에 불안이 강하게 올라와 회피행동을 하려 할 때 물리칠 대상(아이가 스스로 붙인 별명)에게 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가르친다. 물리칠 대상이 머릿속에 침입할 경우 대응하지 않고 혼자 놀다 나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교육한다. 이때 아이에게 “나는 너에게 대응하지 않겠어. 그냥 놀다 가렴”이라고 혼잣말하게 시킨다. 꽤 유용하다.

노출-반응방지 기법을 수행할 때 각각의 노출 상황에 따른 불안 점수를 매기게 한다. 상징적으로 1부터 10까지 점수 매긴 ‘공포 온도계’를 만들어 아이 스스로 자극 노출에 따른 불안 점수가 몇 점인지 인식하게 하면 도움이 된다. 지범이는 1년여 동안의 노출-반응방지 기법으로 상당히 호전됐다. 부모가 치료에 적극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하워드의 엄마가 전염병으로부터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깨끗해야 돼. 너는 안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대목은 최근의 팬데믹 상황에서 묘하게 다가온다. 필수 감염 예방 수칙을 성실히 따르는 것은 건강한 행위이지만 감염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위생 강박은 병적인 것이다. 둘 사이를 잘 구분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 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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