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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의대 증원 왜 찬성했나"…병협 부회장 2명 전격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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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료계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대한병원협회(병협)가 회원사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내홍에 휩싸였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병협 집행부 일부가 자진 사퇴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또 전국 사립대병원장들은 정부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내용의 성명을 검토하고 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오른쪽 두번째)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과 가진 대한병원협회 및 대한중소병원협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오른쪽 두번째)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과 가진 대한병원협회 및 대한중소병원협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영호 병협 회장이 협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혀 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며 “병협 부회장직을 오늘부로 사퇴했다”고 밝혔다.
김영모 인하대 의료원장도 이날 병협 부회장을 사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협의 40대 집행부가 꾸려진 지 석 달 여 만에 상근부회장을 포함한 부회장 12명 중 2명이 사퇴 입장을 밝힌 것이다. 두 사람은 39대부터 부회장직을 맡아왔다.

"협회가 다양한 목소리 담지 않고 일방적 발표" #사립병원장들 "정부 정책 우려" 공동 성명서 검토

김영훈 원장은 “협회는 중소병원과 국립대병원 일부가 정부 정책에 동의한다고 주장하는데 사립대병원과 수련병원은 반대 의견도 많다”며 “전공의를 교육하는 병원의 입장은 병협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사 수 확대나 공공 의대 신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진행해야 하는데 병협이 나서 정부에 동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협은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대표적인 의료단체다. 병협 소속 회원 병원에는 전국 의사 10만여 명 중 60%에 달하는 약 6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규모가 다양한 병원이 회원사로 있다보니 특정 사안을 두고 제각각의 의견이 나올 때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병협은 대학병원장과 중소병원장이 번갈아가며 회장을 맡는데, 지금은 중소병원장인 정영호 인천한림병원장이 맡고 있다.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김영모 원장은 “사립대병원도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밀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생략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과거 의학전문대학원의 실패에서 보듯, 준비가 안 된 정책 추진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며 “병협이 이런 문제를 중재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현재 사립대의료원협의회장과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두 곳 협의회에 속한 60여곳의 병원은 병협과 달리 의대 증원 정책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는 “무조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며 “정부가 의료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병협 소속 수련병원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신응진 순천향대 부천병원 원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 필요성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인원수 책정과 시행 방법에 있어 의료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협은 직종별 연합단체로 일부 의견이 전체의 의견일 수 없는 만큼 현 사태에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를 수련하는 전국 약 260곳 수련병원이 중심이 된 대한수련병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협의회 이사회에서 이런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며 “다음주 중 상급종합병원협의회와 사립대의료원협의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등이 만나 관련 사안을 논의하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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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병협은 지난달 23일 정부와 여당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하자,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병협은 “이제라도 의료 현장의 고충을 헤아려 의대 입학정원 증원계획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다행”이라며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의료인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이 집단 휴진까지 예고하며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엇박자를 낸 것으로 비쳤다.

이날 경남도의사회는 정영호 병협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사회는 “작은 이익을 위해 정부 편에 서서, 의사를 사지로 몰고 가면서도 파렴치하게 공공의 이익을 부르짖는 병협회장의 행태가 안타깝다”며 “의사 죽이기에 앞장선 정영호 병협회의 퇴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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