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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독립운동가 10명 나온 임청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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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석주 이상룡 선생의 현손 이창수씨

권혁재의 사람사진 /석주 이상룡 선생의 현손 이창수씨

2018년 삼일절을 앞두고 안동 임청각을 찾았다.
임청각과 낙동강 사이에 난데없는 방음벽이 있었다.
벽은 기차 소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임청각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그 아래로 가문의 독립유공자 사진들이 걸려있다.

임청각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그 아래로 가문의 독립유공자 사진들이 걸려있다.

독립운동의 산실로 알려진 임청각 바로 앞에 웬 기찻길일까?
그건 일제가 임청각을 가로질러 놓은 중앙선 철로였다.
이 가문의 맥을 끊으려 일제가 철길을 강제로 놓은 것이었다.
그 바람에 99칸 중 50여칸이 철거되고 임청각은 반 토막이 났다.
오죽했으면 일제가 철길로라도 이 가문의 맥을 끊으려 했을까.
무려 아홉의 독립운동가가 예서 났으니 그랬을 터다.

석주 이상룡의 선생의 초상

석주 이상룡의 선생의 초상

이 모두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생은 1911년 임청각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건너갔다.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항일투쟁을 이끌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수반)까지 맡았다.

임청각 군자정 대청에 걸린 석주 이상룡 선생의 거국음(去國吟 조국을 떠나며 읊음).

임청각 군자정 대청에 걸린 석주 이상룡 선생의 거국음(去國吟 조국을 떠나며 읊음).

군자정 대청에 선생의 거국음(去國吟, 조국을 떠나며 읊는다)이 걸려있다.
‘그 무슨 문명이 노회한 적 불러들여 꿈결에 느닷없이 온전한 나라 깨뜨리나
이 땅에 적의 그물 쳐진 것을 보았으니 어찌 대장부가 제 한 몸을 아끼랴’
조국을 떠나는 비장한 각오는 사당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당엔 신주와 감실이 없이 텅 빈 채였다.
떠나며 선생이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지금도 신주가 없기에 임청각에선 매년 광복절에 합동 기제사를 지낸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 2018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허 여사는 임청각에서 나온 10번째 독립유공자가 됐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 2018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허 여사는 임청각에서 나온 10번째 독립유공자가 됐다.

2018년 광복절,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임청각에서 난 독립운동가는 모두 열 명이 됐다.

가문의 독립운동가 사진을 배경으로 선생의 현손(玄孫)인 이창수씨 사진을 찍었다.
500년 이어 온 임청각을 지켜야 할 소임을 맡은 그가 말했다.
“철로가 걷히고 임청각의 옛 모습을 찾아야 진정한 독립이 이뤄집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