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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갈댓잎 타고 간 까닭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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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호 21면

선(禪)의 통쾌한 농담

선(禪)의 통쾌한 농담

선(禪)의 통쾌한 농담
김영욱 지음
김영사

한·중·일 박물관 소장 ‘선화 39점’ #경전 찢고, 목불 태우는 정신 치열

한마디 말이 없는 침묵이 수만 마디 말보다 더 무게가 나갈 때가 있다. 말 없는 길을 찾는 선(禪)도 그런 세계다.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을 최소한의 언어로 표현하면 선시(禪詩)가 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를 그림으로 그려내면 선화(禪畵)가 된다. 선사와 묵객의 ‘말 없는 가르침’은 오랜 세월 예술로 남아 깨달음의 빛을 찾는 후학들에게 등대 역할을 한다.

신간 『선(禪)의 통쾌한 농담』은 그런 선화의 세계를 선시와 함께 읽어내는 책이다. 한·중·일의 박물관에 소장된 선화 39점과 그에 맞춘 선시를 곁들여 해설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순간 기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이란 제목이 돌출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붓다의 마음을 표현한 선을 농담이라고 몰아붙이다니!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뜻하는 ‘농담(弄談)’, 즉 조크(joke)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제목의 농담이란 말이 ‘농담(濃淡)’, 즉 수묵화에서 먹의 짙음과 옅음의 정도를 뜻함을 알게 되었다.

농담(濃淡)을 농담(弄談)으로만 오해할 수 있는 것이 말과 글의 세계다. 오해를 이해로 착각하는 일이 어디 이 농담뿐일까? 이해와 오해는 언제 어디서나 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인도에서 온 달마 대사가 갈대 한 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 김명국 작,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 1643년, 종이에 먹, 97.6x48.2㎝.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김영사]

인도에서 온 달마 대사가 갈대 한 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 김명국 작,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 1643년, 종이에 먹, 97.6x48.2㎝.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김영사]

먹의 농담으로 풀어내는 필선은 때론 담담하고 부드럽게 올라갔다가 때론 거침없이 호쾌하게 내려온다. 먹을 다른 먹으로 깨트리는가 하면(파묵, 破墨), 먹을 뿌리거나 흐르는 먹을 이용하여 윤곽선 없이 그리기도(발묵, 潑墨) 한다. 전통미술 연구자인 저자는 이런 기법을 오늘날 서양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과 비교하기도 했다.

선은 6세기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크게 꽃을 피운 불교의 한 종파이기도 한데, 520년경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를 초조(初祖)로 본다. 달마의 불법(佛法)은 제2조 혜가, 제3조 승찬, 제4조 도신, 제5조 홍인, 제6조 혜능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이 선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조선 중기 화가 김명국은 달마가 갈대 한 잎을 타고 강을 건너가는 그림을 그렸다.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라고 부른다. 붓과 먹으로 순식간에 쓱쓱 그려낸 듯한 화폭 위엔 김명국의 아호인 ‘취옹(醉翁)’이란 글씨 이외에 아무런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달마가 인도에서 서쪽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또 중국 남조에서 활동하던 달마가 갈댓잎을 타고 북조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이 그림은 던지고 있다. 불법과 선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그림이다. 대답은 그림을 보는 이들이 각자 찾아야 한다. 그런 질문과 대답이 상황과 인물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 남송 시대의 화가 양해는 불교 경전을 찢는 6조 혜능을 그렸다. ‘육조파경도(六祖破經圖)’라고 부른다. 경전의 글자에만 집착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전만 찢는 것이 아니다. 원나라 화가 인다라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목불(木佛,나무로 만든 부처)을 태우는 그림을 그렸다.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의 정신을 이보다 더 치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상을 태우면서 말이나 외형에 집착하는 나의 어리석음도 태워버리라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경전을 찢고, 목불을 태운다는 얘기가 마치 시원한 농담(弄談)처럼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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