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교육주권 선언…35세에 모교 교장 된 우이팡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38〉

우이팡 가족이 남긴 유일한 사진. 앞줄 왼쪽부터 부친, 동생, 모친, 조모, 천수퉁의 형과 찬수퉁. 뒷줄 왼쪽 첫째가 14세 소녀 우이팡. 옆은 언니와 오빠. 1907년 우한(武漢). [사진 김명호]

서구 열강의 중국 진출은 성경이 대포나 돈보다 먼저였다. 선교사들은 도시와 농촌에 학교부터 세웠다. 여성교육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1개 현(縣)에 외국인이 설립한 여자 중학 한두 개는 있었다. 최종 목표는 선교였다. 1911년 가을, 혁명이 발발했다. 신정(新政)이 실시되자 여학교가 늘어났다. 여중 졸업생을 수용할 고등교육기관은 전무했다. 당시 대학은 여학생을 뽑지 않았다.

자연과학·인문학에 두루 출중 #“우이팡, 중국 신·구가 융합된 학생 #전족한 몸으로 모든 활동에 참여” #후스 “명작 읽는 낭랑한 소리 일품” #진링여대 졸업 후 고교 교사 재직 #미시간대서 생물학 공부하고 귀국

1912년 11월, 강남의 7개 교회를 대표하는 미국 여성 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4년제 여자대학을 난징(南京)에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교명은 난징의 옛 이름을 딴 진링여자대학(金陵女子大學)으로 하고 교장(총장)은 서스톤 부인이 맡는다. 3년간 준비를 거쳐 1915년 개교를 목표로 한다.” 서스톤은 학술지와 신문 뒤지며 교수 요원을 발굴했다. 미국 전역 다니며 모금 활동도 벌였다. 학교 부지로 청나라 말기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리훙장(李鴻章·이홍장)의 다섯째 아들이 여덟 번째 부인과 살던 대저택을 헐값에 매입했다.

엄격한 학칙 적용에 자퇴 학생 줄 이어

개교 초기의 진링여대 교수와 학생들. 둘째 줄 키 큰 여성이 초대 교장 서스톤.

1915년 가을에 문을 연 진링여자대학은 창장(長江) 유역의 유일한 여자대학이었다. 여러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미국의 명문 스미스여대는 참관단을 파견해 자매결연을 하였다. 매년 학교 운영비 일부를 부담하고 학기 실습생을 보냈다. 뉴욕주립대학은 진링여대 졸업생이 유학 올 경우 학점을 인정했다.

서스톤은 전인교육(全人敎育)과 실천교육(實踐敎育)의 신봉자였다. 학생관리가 엄격했다. 70점 이하는 보충수업 듣고 재시험을 치르게 했다. 70점 아래가 두 과목이면 무조건 유급이었다. 신입생에게 IQ 측정도 실시했다. 90 이하는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걷는 자세, 음악에 대한 소양, 조직 활동의 중요성,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능력, 주변인들에 대한 관심과 봉사, 체육 활동 등 요구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회하는 학생이 줄을 이었다. 서스톤은 자퇴 희망자를 만류하지 않았다.

우이팡(吳貽芳·오이방)은 모든 면에서 발군이었다. 서스톤이 동료 교수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저 애는 중국의 신구(新舊)가 적절히 융합된 학생이다. 전족을 해 불편한 몸으로 모든 활동에 빠지는 법이 없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소양이 출중하고, 영어 문장은 우리가 봐도 놀랄 정도다.”

우이팡은 5·4운동으로 온 중국이 들썩거리던 1919년 가을, 최고 성적으로 진링여대 졸업장을 받았다. 베이징여자고등사범이 우이팡을 영어 교사로 초빙했다. 학생들은 영어 시간에 26세의 자그마한 전족의 여교사가 나타나자 당황했다고 한다. 후스(胡適·호적)의 회고를 소개한다. “호기심에 우이팡의 강의를 창밖에서 몰래 청강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명작을 읽는 조용하고 낭랑한 음성이 일품이었다. 까치발하고 교실 안을 들여다봤지만, 그날따라 안경 놓고 오는 바람에 얼굴은 보지 못했다. 25년 후 유엔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때 얘기했더니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소문대로 교양과 기품이 넘쳤다.”

1921년 겨울, 미국 명문 마운트홀리요크여대 총장이 베이징여자고등사범을 방문했다. 강연을 마친 총장은 우이팡의 품위 있는 통역에 혀를 내둘렀다. 귀국 후 미시간대학에 우이팡을 추천했다. 몇 개월 후, 우이팡은 미시간대학이 보낸 대학원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우이팡은 미시간대학에서 생물학 학위과정을 밟았다. 적응력이 빠르고 모두에게 호감을 줬다. 1년 후 유학생회 부회장에 선출됐다. 이모부 천수퉁(陳叔通·진숙통)은 학업에만 열중하라며 매달 돈을 보내줬다.

매년 5월, 진링여대는 졸업생까지 참석한 운동회를 열었다.

파스퇴르 장학금까지 받다 보니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다. 우이팡은 학교 화장실 변기와 식당 청소하며 저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천수퉁의 딸 유학자금을 부지런히 모았다. 두 동생이 미시간대학에 유학 오자 밤새 교내 산책하며 훌쩍거렸다.

1925년 5월, 상하이의 일본 자본가가 중국 노동자를 학살했다. 대규모 시위가 동방의 국제도시를 마비시켰다. 영국 경찰의 발포를 계기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미국 신문도 연일 사건을 보도했다. 우이팡은 일본과 영국의 폭행에 분노했다.

하루는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미시간대학을 방문했다. 학생 4000여 명이 운집한 교정에서 중국을 모욕했다. “중국은 낙후된 나라다. 국민은 무지하고 정부는 무능하다. 도적과 비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독립된 국가가 될 자격이 없다.” 우이팡은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안 잤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강연을 비판하는 문장을 새벽까지 완성했다. ‘미시간일보’에 실린 글을 본 중국학생들은 우이팡만 보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이팡은 청년들의 그런 모습에 더 치욕을 느꼈다.

호주 총리가 중국 모욕하자 신문에 비판 글

1928년, 북벌(北伐)을 마친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교육주권을 선언했다. “외국인이 설립한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권을 회수한다.” 상하이에서 진링여자대학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은 중국인 교장 선출이었다. 생물학과 주임이 우이팡을 추천했다. 교장 서스톤은 다른 사람을 천거했다. 두 명 모두 실력과 자격에는 이상이 없었다. 서스톤이 염두에 둔 인물은 예의범절에 결격 사유가 있었다. 이사회는 우이팡을 낙점했다. 미국에 편지를 보냈다. “진링여자대학은 우이팡에게 대학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즉시 귀국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여자대학을 충분히 둘러보며 교장 임무 수행할 준비를 하기 바란다.” 우이팡 35세 때였다.

같은 해 11월 4일 밤, 오색 등불이 진링여대 체육관을 물들였다. 귀빈석이 요란했다. 소박한 복장에 단정한 모습의 우이팡이 취임사를 시작했다. 첫마디에 다들 깜짝 놀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