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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교수, 직접 처벌하자"…'징계 사이트' 만든 서울대생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의 교원징계위원회 사이트. [홈페이지 캡쳐]

서울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의 교원징계위원회 사이트. [홈페이지 캡쳐]

“이제부터 여러분은 음악대학 B교수의 처벌 수위를 정하는 학생 징계위원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모의 교원징계위원회’ 사이트를 개설했다. 성 관련 비위를 저지른 교원을 실제 징계할 순 없지만, 모의 재판을 여는 식이다. 최근 잇달아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갑질 사건이 공론화됐지만, 학교 차원의 징계가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만들었다.

앞서 서울대 음대 A교수가 대학원생 제자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하고 식사 사진 등을 보낼 것을 강요해 교원징계위에 회부됐다. B교수는 지난 2015년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교내 인권센터 조사를 받고 있다. 두 교수는 경찰·검찰 조사도 받았다. 지난해 성추행 혐의로 해임된 서어서문학과 교수의 징계절차 과정에선 학교 측의 늑장 대처와 '깜깜이' 징계위가 논란이 됐다.

사이트를 만든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음대특위)’ 관계자는 “서어서문학과 교수 사건의 첫 신고는 2018년 7월에 접수됐다. 하지만 징계 처분은 1년도 더 지난 지난해 8월에야 이뤄졌다”며 지난해 피해자가 지속해서 징계위에 진행 상황을 문의했지만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피해자는 해당 교수의 해임 처분 결과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징계 절차가 지연될수록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만큼 정확하고 빠른 의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학생 손으로 해임 선택 가능”

서울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의 교원징계위원회 사이트. [홈페이지 캡쳐]

서울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의 교원징계위원회 사이트. [홈페이지 캡쳐]

사이트에선 학생이 직접 해당 교수의 처벌수위를 선택할 수 있다. 견책, 감봉, 3개월 정직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부터 파면, 해임 등 중징계까지 내릴 수 있다. 피해자 권리 보호, 징계 처분 의결 기간 등도 선택할 수 있다.

학생들이 사이트를 만든 건 현재 교원 징계 과정에서 학생들 의사가 배제됐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음대특위 관계자는 “교내 교원징계규정에 따르면 징계위원의 자격은 교원과 교직원, 그리고 외부위원에게만 있다”며 “권력형 성폭력·갑질 사건의 주요한 이해당사자인 학생은 징계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음대특위 관계자는 또 “가해 교수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위원들이 가해 교수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며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대학을 위해 징계위에 학생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징계 아니야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6일 기자회견에서 예술계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6일 기자회견에서 예술계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해당 사이트는 학교 차원에서 만든 공식 사이트는 아니다. 학생들의 선택 결과가 실제 징계위에 반영되진 않는다. 하지만 음대 특위는 해당 결과를 기자회견, 성명문 등의 형태로 외부에 공개할 예정이다. 음대특위는 학생단체·예술단체와 연대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교수의 파면을 촉구해왔다.

음대특위 관계자는 “한국 대학가는 권력형 성폭력의 온상”이라며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사건들이 반복되는 건 구조적인 문제다. 가해 교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비민주적 대학구조와 밀실 징계위 등 관행을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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