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환자 괴롭히는 병원

중앙일보

입력

李모(47)씨는 몇 달 전 K대병원 심장내과에 전화를 걸어 외래진료 예약을 신청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예약하려면 병원에 직접 와야 한다" 고 말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병원에 가 예약을 했다.

그런데 병원 직원은 "환자가 밀려 있으니 두 달 뒤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며 예약 날짜와 시간을 잡아줬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동안 동네 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다가 예약 날짜에 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은 앉을 틈도 없이 환자들로 북적댔다.

그런데 예약시간인 오전 11시30분은커녕 낮 12시가 넘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항의했더니 예약자 명단을 보여 주었는데 오전 예약자만도 1백여명이나 됐다.

한 사람에 3분씩 진료하더라도 오전에 다 처리할 수 없는 숫자였다.

아니나다를까 李씨 등 10여명의 진료시간이 오후 2시 이후로 미뤄졌다. 이렇게 순서가 밀린 데다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나니 오후 5시쯤에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진료 예약 문화는 병원측이 조금만 신경쓰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병원을 찾아오라고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재진 환자의 경우에도 보통 한시간씩 기다린다. 급한 사람은 환자지, 병원이 아니라는 식이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의자 수가 적은 데다 공기가 탁하고 소음이 심해 아픈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병원이 아무리 시설을 고급화하고 친절을 강조해도 환자들의 불편을 돌보는 작은 보살핌이 없다면 '환자를 만족시키겠다' 는 슬로건은 헛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