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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공원' 망자의 안식·산자의 휴식처로 탈바꿈

중앙일보

입력

망자(亡者)를 모시는 방법이 점차 바뀌고 있다. '산골짜기 명당' 이 아닌 집 주변의 잘 가꾸어진 추모공원(memorial park)을 선호하는 도시인이 늘고 있다.

화장률은 급속히 늘고 있는데도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답답한 장묘문화를 개선하는 묘수는 없을까.

# 공원이냐 묘지냐

지난 2월 스위스 융프라우 부근 산골마을. 배낭여행 중인 대학생 이병주(25)씨는 숙소를 나와 산책하다가 아담한 공원을 발견했다.

'이런 산골에도 귀여운 공원이 있네' 라고 생각하며 입구로 들어서던 그는 깜짝 놀랐다. 수북히 피어 있는 꽃과 단정하게 정리된 산책로, 우거진 나무 사이의 땅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납골함을 덮은 비석이었다. 공원 같은 묘지였던 것이다.

스스로 놀란 것은 이씨 자신의 느낌이었다. '재수없어' 혹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지' 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잘 가꾼 정원을 거니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 마저 들었다. 죽음의 공간임에도 풍겨나는 친근감이 놀라웠다.

주위를 둘러봤다. 비석마다 놓여진 한다발씩의 꽃. 한눈에 봐도 물기가 싱싱했다. 2년 전 사별한 남편의 묘지를 찾았다는 한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집에서 묘지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때마다 들른다" 고 했다. 유족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고 보니 비단 시골 뿐만 아니었다. 대도시 안에도 납골당이 있어 유족들이 찾기 쉽다고 한다.

그제서야 이씨는 '동방예의지국' 이란 말이 쑥쓰러웠다. 1년에 한두번, 기껏해야 명절에만 성묘하는 우리 현실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또 묘지와 마을이 엮어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 도 무척 조화로워 보였다.

# 요람만 있고 무덤은 없다

최근 화장률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1991년 24.2%였으나 97년 33%, 올해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수도(首都)에 화장장이나 납골당이 없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왜 그럴까.

기록에 따르면 경성부립화장장(지금의 서울시립화장장)이 4대문 밖인 신당동에 있었다. 이것이 아현동을 거쳐 30년대에 홍제동으로 옮겨 갔다.

계속되는 도시 팽창으로 시립화장장은 70년에 고양시 벽제리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도시를 확장하면서 죽음과 관련한 장소를 '혐오시설' 로 간주해 모두 외곽으로 몰아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을 상징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표현을 빗대 "서울에 '요람' 은 있으나 '무덤' 은 없다" 고 지적하고 있다. 또 수십만명이 유입되는 수도권 신도시들에 도시계획 단계에서 장묘 관련 시설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화장을 꺼리는 데는 뿌리 깊은 선입견도 한몫 한다. '화장=악상(惡喪)' 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장묘 방식은 그 시대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장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시대부터다. 고조선 시대에도 화장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 중기부터 고려 말기까지는 오히려 화장이 일반적인 장묘 방식이었다.

최근엔 국토의 효율성과 환경문제, 경제성과 편리성 등이 제기되면서 화장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 납골당의 종류는

우리의 납골당은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용미리에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화장장과 납골당이 있다.

하지만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 30년 전 화장터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추모의 집(납골당)은 오히려 미술관 건물에 가깝다. 계단마다 벽면에 설치한 현대 작가들의 조각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내형.실외형.왕릉형.가족형 등 납골 시설도 다양하다. 먼저 실내에 마련된 납골당은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대리석으로 덮인 가로.세로 각각 27㎝ 크기의 납골함 앞에는 유족들이 붙여 놓은 사진과 꽃들이 화사하다. 때문에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바라는 유족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건물 밖에 마련된 옥외벽식은 개방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던 고인에게 어울린다. 눈.비가 내리면 맞고, 밤에는 별을 보고, 바람도 불어와 자연과 어울리는 느낌이다. 최첨단 소재를 한 이중 구조여서 습기가 찰 염려도 없다.

특이한 것은 왕릉식이다. 왕릉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봉분 안에 납골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묘지 전문가인 프랑스 파리대학 홍석기 교수는 "한국적 정서와 잘맞는 납골당 개발이 중요하다" 며 "이 점에서 왕릉식 납골당은 성공적인 사례" 라고 말했다.

봉분이 있어 전통적인 묘지 개념도 살아 있고 왕릉식이라 종교적 구분이 필요없다는 설명이다. 또 '큰 것' 을 선호하는 한국적 정서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시립묘지의 납골당 사용료는 모두 15년에 1만5천원이다.

이외에도 부부를 함께 모시는 방식(15년에 3만원)과 여섯평 넓이의 봉분에 납골함 24기를 모시는 가족묘(토지가 포함, 6백만원) 등이 있다.

서울시가 시내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10만평 규모의 추모공원은 장묘 시설 면적이 3~6%에 불과해 공원 분위기가 한껏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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