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업수당 '판도라의 상자' 열린다…$600→200 벼르는 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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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캐피톨 힐. 조기는 최근 사망한 존 루이스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미국 의회 캐피톨 힐. 조기는 최근 사망한 존 루이스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3분기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실업 수당 축소 여부가 곧 결정된다. 여당인 공화당이 백악관ㆍ재무부 등과 조율을 거쳐 실업 수당을 대폭 삭감하는 방안에 대한 내부 조율을 마쳤다.

현행 주당 600달러(약 71만원)인 수당을 200달러로 약 66% 깎는 방안이다. 이를 핵심으로 하는 5차 경기부양책의 규모는 1조 달러 규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공화당이 곧 경기부양책 법안 통과를 위해 돌진하기 시작했다”며 “핵심은 (이번 주 종료되는) 실업 수당”이라고 보도했다.

실업 수당이 축소되면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며 각종 경제 지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7일 “미국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실업 급여 축소 규모를 잘 봐야 한다”고 보도한 배경이다. 실업 급여 축소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계기일 수 있다. 3분기 직후엔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3일)도 예정돼있다.

미국 재무부가 실업급여에 쏟아부은 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미국 재무부가 실업급여에 쏟아부은 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미국 연방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부양책 일환으로 약 2500만명의 실업자에게 특별 실업급여를 지급해왔다. 150억 달러(약 18조원)를 매주 퍼부었다. 주(州) 정부의 지원금과는 별도인 데다 자녀가 있을 경우 추가 지원금 수령도 가능했다.

실업률이 지난해 10월의 최저점인 3.5%에서 지난 6월 기준 11.1%로 치솟았지만 실업 수당이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 덕분인지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3개월의 하락세에서 지난달 0.6%로 반등하기도 했다.

미국 실업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미국 실업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경기 둔화의 속도를 늦췄다는 평가에도 미국 연방 정부의 곳간 사정을 걱정하는 이들은 이 실업 수당을 비판해왔다. 일부 가정의 경우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급여보다 특별 수당 등을 합한 실업 급여 규모가 더 많은 사례가 속출하면서 근로 의욕을 꺾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때문에 미국 연방정부와 백악관에선 실업 급여 축소 주장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실업 급여를 축소해야 근로자들이 다시 경제 활동을 재개해야 경기가 전반적으로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지난 26일 ABC뉴스에 출연해 “기존의 실업 급여 제도가 오히려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집에 머물게 만들었다”며 “정부와 공화당은 다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하는 실업 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 임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일하지 않고도 받는다면 불공정한 일”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은 당장 8월엔 특별 수당이 줄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긴 하겠으나 9월부터는 별도의 주 정부 실업 급여가 지급되기에 기존의 70%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실업자 전원이 아닌 고소득층은 제외한 ‘핀셋 지원’을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연 7만5000달러(8975만원) 이하 소득자 및 부부합산 연 15만 달러 이하 소득자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엔 1인당 1200달러의 현금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학교 운영 정상화를 위해 1100억 달러 지원, 코로나19 검사 추가 지원을 위해 160억 달러, 기업 신규 대출 및 세금 감면 등이 공화당이 마련한 이번 5차 경기부양책 안의 골자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28일(현지시간) 경기부양책 안을 설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28일(현지시간) 경기부양책 안을 설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의회다. 민주당은 “기존 수준으로 실업 수당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당론이다. 상원에선 현재 공화당이 100석 중 53석으로 다소 우세다.

미치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는 지금 한 발은 코로나19팬데믹에, 다른 한 발은 경기 회복의 흐름에 담그고 있다”며 “민주당이 결정을 빨리 내려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에선 “공화당이 우리에게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할 게 뻔할) 에어 볼(air ball)을 던졌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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