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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변화의 상징 된 산드라 오 "한국사람인 게 자랑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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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의 한 파티에 참석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의 한 파티에 참석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주인공은 더 이상 백인일 필요가 없고, 한국인일 수도, 흑인일 수도 있어요. 아직 한 번도 영웅 역할에 보여지지 않은 누군가일 수 있죠.”

지난달 국내 OTT 왓챠를 통해 영국 첩보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3를 선보인 한국계 할리우드 스타 산드라 오(49)의 말이다. 이 드라마로 지난해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영국 첩보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3 #캐나다 이민 2세 주연배우 산드라 오 #백인 캐릭터 한국계로 바꿔 캐스팅 #아시아계 여성 첫 골든글로브 2관왕

백인 캐릭터, 한국계로 바꾼 산드라 오

‘킬링 이브’로 지난해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샌드라 오. 수상 이후 무대 뒤편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

‘킬링 이브’로 지난해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샌드라 오. 수상 이후 무대 뒤편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

그는 “BBC아메리카(방송사)가 나를 이브로 캐스팅한 것 자체가 분명한 변화”라고 했다. ‘킬링 이브’의 주인공 이브는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을 뒤쫓는 영국 정보국의 유일한 아시아계 요원이다. 영국 원작 소설에선 더 젊은 나이의 초록 눈 갈색 머리 백인으로 묘사됐다. 산드라 오를 캐스팅하면서 중년의 한국계 여성으로 바뀌었다.

“중년의 여성 역시 삶에서 온전히 끌어내 생명을 부여했을 때 가장 강력한 캐릭터가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중년 여성들은 드디어 자기 자신을 화면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단지 ‘엄마’ 혹은 ‘아내’로 머무르지 않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이를 통해 장래에 무엇이 가능할지 볼 수 있죠.”

BBC아메리카 드라마 '킬링 이브'에서 산드라 오는 영국 정보국 MI5 요원 이브(사진)를 연기했다. 평범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던 이브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과 애증의 관계로 뒤얽히며 위험한 여정에 나선다. [AP=연합]

BBC아메리카 드라마 '킬링 이브'에서 산드라 오는 영국 정보국 MI5 요원 이브(사진)를 연기했다. 평범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던 이브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과 애증의 관계로 뒤얽히며 위험한 여정에 나선다. [AP=연합]

'이브야' '언니' 한국식 호칭 제안했죠

이번 시즌3는 이브가 런던의 한인타운 ‘뉴몰든’의 한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출발한다. 전편에서 치명상을 입은 이브는 자신에게 편안한 공간에서 숨을 고른다. 그가 만두를 빚고, 밀키스와 신라면을 잔뜩 쓸어담는 장면이 신기하고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킬링 이브’는 드물게 아시아계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작가진이 모두 백인이란 점이 최근 비판받았던 바다. 산드라 오 자신도 촬영 현장에서 75명의 백인 속에 혼자만 유색인종인 적이 있었다고 버라이어티의 대담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한인타운 장면도 당초 작가 수잔 히스코트는 이브가 어딘가 이국적인 공장에서 일하며 부상을 회복하는 모습을 구상했지만, 산드라 오 자신이 ‘이브가 어릴 때 먹었던 음식과 모국어가 있는 공간’을 역제안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팬을 자처한 ‘기생충’ 통역가 샤론 최(최성재)와 지난달 25일 공개한 화상 인터뷰에서다.

‘이브야’ ‘이브 언니’ 같은 한국식 호칭도 인상적이더라.

“그걸 알아채 줘서 기쁘다. 영미권 TV에서 한국 배우들과 한국어를 접하게 돼서 굉장히 자랑스럽다. 서구 관중들에겐 미묘한 것일 수 있지만 내겐 큰 의미다. 이런 제안을 할 만큼 충분한 힘을 갖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고 그 결실을 보게 됐으니까.”

할리우드 활동 전엔 캐나다에서 한국계 이민 2세로 자랐다. 실제 ‘오미주’란 한국 이름이 있던데.

“난 이름이 아주 많다. 부모님은 나를 미주, 샌디, 산드라 그리고 그 모두를 끊임없이 섞어서 불렀다!”(웃음)

어머니 전영남씨와 산드라 오. 사진은 2018년 9월 제70회 에미상시상식 모습이다. [AP=연합]

어머니 전영남씨와 산드라 오. 사진은 2018년 9월 제70회 에미상시상식 모습이다. [AP=연합]

'그레이스 아나토미' 후 15년, 바뀐 것은

산드라 오가 캐스팅되며 한국계로 캐릭터가 바뀐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즌10까지 에미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오른 의학 드라마 ‘그레이스 아나토미’(2005~2014)의 인기 캐릭터 크리스티나 양 역할도 원래는 금발의 백인 설정. 그를 놓치기 싫었던 제작진이 한국계로 바꿔 캐스팅했다. 이 드라마로 2006년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킬링 이브’로 같은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골든글로브를 거듭 수상한 사상 첫 아시아계 여성이 됐다.

지난해 아시아계 사상 처음 골든글로브 사회자로 나서며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고 했던 그는 그 자신이 할리우드 변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부모님을 향해 한국말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했던 수상 소감도 화제였다.

‘그레이스 아나토미’가 시작했던 15년 전과 지금 할리우드가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무척 다른 시대다. 그러니까 15년 전인데… 와우. ‘그레이스 아나토미’는 정말 혁명적이었다. 출연진의 거의 절반이 유색인종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등장인물의 문화나 인종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어떤 캐릭터의 문화적 배경을 깊이 파고들수록 그 캐릭터와 더 깊은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투자받고 관심을 얻고 이해받게 된 건 최근에 와서다. 거의 30년에 걸친 내 배우 경력 중 지난 1년 동안에야 겨우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했다. 좋은 생각과 그것이 실제 만들어지고 홍보되고 보이는 것 사이엔 먼 거리가 있다. 진정한 변화는 극도로 느리고 궁극적으로 외부적 힘에 의존할 수 없다.”

'기생충' 오스카 수상에 '태극기 축사'  

올초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을 때 산드라 오가 자신의 트위터에 태극기 이모지와 함께 올린 축하 메시지. [트위터 캡처]

올초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을 때 산드라 오가 자신의 트위터에 태극기 이모지와 함께 올린 축하 메시지. [트위터 캡처]

올 2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 당시 객석에서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축하한다 #영화기생충 한국사람인 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태극기 이모티콘과 함께 축사를 전했던 그다. 지난달 샤론 최와 인터뷰에선 최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문제 등도 언급했다.

이 인터뷰가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고 하자 “그랬다니 기쁘다”며 “좋은 인터뷰는 한 쪽이 질문만 하기보다 대화에 가깝다”고 돌이켰다.

산드라 오와 '킬링 이브' 공동 주연을 맡은 영국 배우 조디 코머가 지난해 9월 LA에서 열린 영국아카데미의 한 파티에 참석했다. [AFP=연합]

산드라 오와 '킬링 이브' 공동 주연을 맡은 영국 배우 조디 코머가 지난해 9월 LA에서 열린 영국아카데미의 한 파티에 참석했다. [AFP=연합]

샤론 최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한국 사람들이 샤론 최가 미국에서 얼마나 유명해졌는지를 아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했던 봉 감독의 ‘기생충’ 통역 때문에 말이다. 샤론 최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리들의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길을 찾으려는 두 아티스트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는 완전한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구사자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공유했고 나는 백인 및 서구 사회와 산업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 여성으로서 내 관점을 나눌 수 있었다.”

이창동·박찬욱·봉준호 함께 작품 해보고파

지난해 3월 산드라 오가 미국 NBC 인기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호스트로 출연한 모습. '킬링 이브'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역대 아시아계 여성 세 번째 호스트로 나섰다. 사진은 당시 방송 중 한 코너에서 그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통역 역할을 맡은 모습이다. [방송 캡처]

지난해 3월 산드라 오가 미국 NBC 인기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호스트로 출연한 모습. '킬링 이브'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역대 아시아계 여성 세 번째 호스트로 나섰다. 사진은 당시 방송 중 한 코너에서 그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통역 역할을 맡은 모습이다. [방송 캡처]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부산국제영화제도 가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진심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실제로 이창동‧박찬욱 감독 같은 훌륭한 한국 감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언젠가 봉준호 감독과도 만날 날을 기대한다. 그분들과 함께 일한다면 최고의 영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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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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