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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려 돈 보냈는데 사기당했다면···법원도 헷갈린 유·무죄

중앙일보

입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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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사려고 돈을 보냈지만 물건은 받지 못한 채 사기당했다면 ‘마약 매수 미수’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를 두고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2018년 5월 A씨는 대마로 인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마약류 관리법)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그해 12월 A씨는 대마를 또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 판매책에게 연락했다.

A씨는 70만원을 보냈지만 판매책은 돈을 받자마자 대화창을 닫고 잠적했다. A씨는 이후 약 2주 동안 대마와 엑스터시를 사기 위해 세 차례나 더 시도했다. 총 92만 원가량의 돈을 보냈지만 실제로 대마를 손에 얻은 건 한 번뿐이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대마 관련 범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은 채 범행을 반복적으로 저질러 죄책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다만 돈은 송금했지만 대마를 받지 못해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A씨는 너무 무거운 형이 내려졌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1심보다 가벼운 징역 10개월형을 선고했다. 일부 혐의를 무죄로 봤기 때문이다. 1·2심의 판단이 달랐던 건 마약을 사려고 돈을 보낸 행위가 마약 매수를 위한 실행의 ‘착수’ 단계로 볼 수 있나 여부에 달렸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마약 매매 합의가 성립한 후 실제로 마약을 이전하는 행위가 시작되는 시점을 착수라고 봤다. 돈을 보내자마자 마약을 판매한다던 사람과 곧바로 연락이 끊어졌다면 마약을 이전하는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착수'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행위를 마약 구매 ‘미수’로 본 마약류관리법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이보다 축소된 사실인 마약 구매 ‘예비’ 혐의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런 2심 재판부의 판결을 뒤집었다고 27일 밝혔다. 마약을 입수할 수 있게 해주는 판매책에게 돈을 보냈다면 그 자체로 마약 매수에 밀착하는 행위가 벌어진 것이고, 이는 실행의 착수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2심 판결에 대해 "이러한 사정에 관하여 전혀 심리하지 않은 채 범행이 실행의 착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마약 매매 미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만장일치로 2심 재판부에 사건을 다시 판결하라고 돌려보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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