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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일곱가족 잃고 아롱이도 떠났다···울산 돌고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울산시 남구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 '고장수'(오른쪽)가 어미인 '장꽃분'과 함께 유영하고 있다. 고장수는 고아롱의 새끼로 2017년 6월 고래생태체험관 수족관에서 태어났다. [연합뉴스]

울산시 남구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 '고장수'(오른쪽)가 어미인 '장꽃분'과 함께 유영하고 있다. 고장수는 고아롱의 새끼로 2017년 6월 고래생태체험관 수족관에서 태어났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9시쯤 울산 남구의 고래생태체험관. 수컷 큰돌고래 ‘고아롱’이 수면 위에 힘없이 떠 있었다. 이를 본 사육사가 급히 아롱이를 밖으로 꺼냈다. 하지만 아롱이의 심장은 이미 멎은 뒤였고, 사육사들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채 눈물을 흘렸다.

7살때 울산행…주민증도 생겼지만 #'18살' 수명 절반도 못 채우고 폐사 #"돌고래 무덤" 11년동안 8마리 죽어

 고래생태체험관에 따르면 아롱이의 건강은 죽기 이틀 전 급작스럽게 악화했다. 지난 19일 수의사 정기진료 때에는 특이사항이 없었으나, 20일 오후부터 체온이 상승했고 약을 투여받았다. 모든 사육사가 비상호출돼 아롱이를 지켜봤지만, 아롱이는 먹이를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육사에 따르면 아롱이는 사망 두 시간 전엔 구토 증세까지 보였다.

 사육사 A씨는 “질병 등을 앓다가 사망한 돌고래는 봤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떠나간 돌고래는 아롱이가 처음”이라며 “사육사 모두 가족을 잃은 마음으로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바다서 ‘납치’돼 7살 한국행

돌고래의 주민등록증.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홈페이지 캡쳐]

돌고래의 주민등록증.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홈페이지 캡쳐]

 아롱이는 2009년 10월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개관 때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에서 들여온 돌고래다. 추정 나이는 18살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고래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 측은 “아롱이가 일본 바다에서 납치됐다”고 주장한다. 당시 체험관 측은 7살 아롱이를 일본에서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롱이를 포함해 암컷 큰돌고래 장꽃분(추정 나이 21살) 등 4마리가 함께 들어왔다.

 울산 남구청에서는 돌고래 식구들에게 주민등록증도 만들어줬다.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 가면 울산에 온 날짜가 아롱이의 태어난 날로 지정된 주민등록증을 볼 수 있다. 등본도 있다. 2012년 들어온 식구인 암컷 돌고래 장두리와 2017년 들어온 장두담은 아롱이의 처제로 등록돼 있다. ‘진짜’ 울산 주민이던 아롱이. 아롱이의 11년 수족관 삶은 어땠을까.

 사육사 등에 따르면 아롱이는 고래생태체험관이 생길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대장 역할을 했다. 사육사뿐만 아니라 체험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아롱이는 11년간 7마리의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처음 아롱이가 체험관에 온 지 두 달 만에 같이 온 1마리가 폐사했다. 2012년 3월에는 암컷 2마리를 추가로 들여왔는데, 그해 9월에 1마리가 전염병으로 죽었다. 2015년 8월에는 동료와 몸싸움으로 다친 수컷 1마리가 패혈증으로 죽었다. 2017년 2월에는 일본에서 추가로 수입한 암컷 2마리 중 1마리가 반입 4일 만에 세균성 기관지폐렴으로 폐사했다.

 아롱이는 자식 넷 중 셋을 잃기도 했다. 2014년 3월에는 암컷 장꽃분이 낳은 아롱이의 새끼가 세상으로 나온 지 3일 만에 폐사했다. 장꽃분은 2015년 6월 다시 아롱이의 새끼를 출산했으나, 이번에도 5일 만에 죽었다. 2019년 10월에는 아롱이가 장두리와 낳은 새끼 돌고래가 24일 만에 죽었다.

 아롱이를 포함해 그간 8마리의 돌고래가 체험관에 온 가운데 4마리가 태어났는데도 총 8마리가 떠나갔다. 현재 체험관에는 돌고래 4마리가 남아 있다. 아롱이와 함께 들여온 암컷 장꽃분, 장꽃분이 수족관에서 낳은 수컷 고장수(3), 장두리(11), 장도담(7)이다.

“남은 돌고래 4마리, 방류해야”

고아롱의 주민등록등본.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홈페이지 캡쳐]

고아롱의 주민등록등본.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홈페이지 캡쳐]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7곳의 수족관에서 돌고래 36마리가 살고 있다. 돌고래보호단체는 “고래생태체험관에 남은 생존 돌고래 4마리 방류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는 아롱이가 폐사한 지난 22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통 야생 큰돌고래 평균 수명이 40년임에 비춰볼 때 (고아롱은) 절반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었다”며 “고래생태체험관은 반복되는 돌고래 폐사로 시민들로부터 ‘돌고래 무덤’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했다.

 이어 “울산 남구청은 그간 핫핑크돌핀스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수족관 돌고래 번식 금지’와 ‘사육 중단’, ‘바다쉼터 마련 등을 통한 야생방류’ 의견을 매번 외면하고 남은 돌고래들을 잘 키우겠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제 생존 돌고래의 방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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