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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위에 이정현 있다는 '반도'…"짐승처럼 살아남은 모성"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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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에서 좀비에 맞서 두 딸을 지키는 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을 개봉 다음날인 1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영화 '반도'에서 좀비에 맞서 두 딸을 지키는 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을 개봉 다음날인 1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개봉 열흘째 239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반도’에서 주연 배우 강동원을 압도하는 액션 전사가 있으니 바로 이정현(40)이다. 좀비가 창궐한 ‘부산행’ 4년 후 폐허가 된 서울을 그린 영화에서 그는 어린 두 딸을 지켜낸 엄마 민정을 연기했다. 좀비떼를 쳐부술 무기론 총기, 대형 트럭 가리지 않는 ‘슈퍼맘’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에 맞서 이 악무는 절박감은 극 전반을 이끄는 주인공 정석(강동원)을 압도할 정도. 관람객 평 중엔 “강동원 위에 이정현 있다”는 것도 나왔다.

'반도' 열흘째 239만 관객 동원 #흥행주역 '슈퍼맘' 전사 이정현 #"처절한 생존, 데뷔작 '꽃잎'이 시초 #내려놓는 법 배우고 편해졌죠"

'명량' '군함도' 잇는 '반도' 이정현

배우 이정현은 영화 '반도'에서 남다른 생존력으로 '부산행' 속 좀비 재난 이후 4년 넘게 살아남은 생존자 민정을 연기했다. 이정현은 "민정의 강인한 생존력과 모성애를 어떻게 같이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 NEW]

배우 이정현은 영화 '반도'에서 남다른 생존력으로 '부산행' 속 좀비 재난 이후 4년 넘게 살아남은 생존자 민정을 연기했다. 이정현은 "민정의 강인한 생존력과 모성애를 어떻게 같이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 NEW]

1761만 관객을 동원한 역대 흥행 1위 ‘명량’의 절벽에서 울부짖던 정씨 여인, 659만명이 관람한 ‘군함도’의 일본군 위안부 말년까지 액션 스펙터클을 내세운 블록버스터에서 찰나, 찰나 진한 감정선을 끼얹는 이정현표 연기는 여름 대작 영화에 ‘치트키’처럼 활용돼온 바다. ‘반도’는 그에게 더욱 각별했다.

“좀비를 너무 좋아해서 박찬욱‧박찬경 감독님과 작업한 ‘브이’ 뮤직비디오(2013)부터 이미 좀비(설정)를 했어요. 연상호 감독님의 ‘부산행’ 때도 드디어 한국 좀비영화가 나온다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반도’로 연락해주셔서 놀랐죠.” 개봉 다음 날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이정현이 들려준 얘기다.

영화 '반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극장가에서 일주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연상호 감독,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200만 돌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진 NEW]

영화 '반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극장가에서 일주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연상호 감독,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200만 돌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진 NEW]

연상호 "몸 가냘픈데 얼굴에 깡있어" 

연 감독은 그여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농담삼아 (테크노 가수 시절) 뮤직비디오(‘바꿔’)에서 인어로 변신한 이정현이 회 먹는 모습도 얘기했는데, 걸어온 모습이 다양하잖아요. 몸은 가냘프고 얼굴에 깡이 있죠. 민정은 절뚝거리는 질주의 이미지가 중요했는데 한 번에 가기 힘든 이미지여서 이정현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짧은 순간 몰입도 높은 감정 표현도 이정현의 강점이다. “연습하거나 계획 세우기보다, 오늘 찍을 장면이 있으면 앞뒤 상황만 인지하고 현장에 가서 확 몰입하는 편”이라는 그는 “캐릭터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고 늘 노력한다”고 했다. 민정의 이 악무는 표정도 “아이들 때문에 짐승처럼 살아남은 모성, 전투력이라면 다 그런 표정이 나올 것 같았다. 민정이 현시대의 모든 어머니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정현 왼쪽으로 딸 역의 배우 이레, 이예원. 두 배우가 현장에서 이정현을 ‘엄마’ 라고 부르며 실제 딸처럼 지냈단다. 이정현은 "저도 조카가 여덟 명이라 (그는 다섯 자매 중 막내다), 기저귀 갈고 분유 타먹이면서 엄마 심정은 알겠더라"면서 "촬영장의 비타민 이예원, 이레 배우 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진 NEW]

이정현 왼쪽으로 딸 역의 배우 이레, 이예원. 두 배우가 현장에서 이정현을 ‘엄마’ 라고 부르며 실제 딸처럼 지냈단다. 이정현은 "저도 조카가 여덟 명이라 (그는 다섯 자매 중 막내다), 기저귀 갈고 분유 타먹이면서 엄마 심정은 알겠더라"면서 "촬영장의 비타민 이예원, 이레 배우 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진 NEW]

구르기·옆차기 준비하고 현장 갔더니…

걱정했던 대규모 카체이싱은 예상 밖에 수월했다고. “연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은 없었는데 제가 걱정돼서 2~3개월 액션스쿨 다니면서 4회 연속 구르기, 2단 옆차기, 별의별 거 다 했거든요….” 막상 촬영장에 가니 그린 매트에 각각 좌우, 앞뒤로 움직이는 트럭 앞부분 세트만 두 개가 있더란다. “여기서 어떻게 연기하란 말이지, 했는데 감독님이 프리프러덕션하며 CG를 준비하셨더라고요. 테스트 촬영하고 합성된 걸 현장에서 보여주셨죠.”

“감독님이 컷 계산이 빨라서 배우들한테 불필요한 연기를 안 시켰다”면서 “연기를 하다 만 것 같을 정도로 짧게 찍었다. 어떤 날은 3초만 찍고 갔다. 핸들 꺾으면서 놀랜 것만 찍고서 뒤에 631부대 따라오는 컷과 붙이니까 액션 시퀀스 하나가 바로 완성되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했다.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익숙한 서울 지형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익숙한 서울 지형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사진 NEW]

처절한 생존 캐릭터 시초는 '꽃잎' 

스크린 데뷔작 '꽃잎'(1996)에서 열여섯 살 이정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된 소녀를 연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 대우시네마]

스크린 데뷔작 '꽃잎'(1996)에서 열여섯 살 이정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된 소녀를 연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 대우시네마]

“유독 처절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강인해 보여야 하는 시나리오만 들어온다”는 그다. 그 시초를 24년 전 스크린 데뷔작 ‘꽃잎’(감독 장선우)으로 들었다.

‘반도’와 비교하면 컴퓨터그래픽(CG)은 고사하고 “필름이 너무 비싸서 NG 나면 큰일 나던” 극과 극의 시절이다. 영화에서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희생된 소녀였다. 열여섯 살 미성년자 배우에겐 가혹한 연기였다. 폭행당하고 상처투성이 나신이 드러나고 자해하는 모습이 아프게 이어졌다. 연기하다 실제 돌에 다리를 맞아 주저앉고 머리로 유리를 깨 피 흘린 적이 허다했다.

진짜 미친 줄 알고 시골 할머니들이…

“감독님이 무서우셨는데 제가 연기를 못해서 첫 촬영을 접은 후론 스스로 미친 소녀로 살자, 결심했죠. 분장하고 배회하는 저를 시골 할머니들이 데려다 밥 먹이고 씻겨주기도 했어요. 아픈 연기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상처도 다 진짜였어요. 무식하게 했죠.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감성도 풍부해지고 표현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이 연기로 대종상‧청룡영화상 등 신인상을 휩쓸었다.

"20대 후반부터 내려놓는 법 배웠죠" 

이정현(가운데)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금 인정받는 계기가 된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가혹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피의 복수에 나선 주부 수남을 연기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이정현(가운데)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금 인정받는 계기가 된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가혹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피의 복수에 나선 주부 수남을 연기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1999년 가수로 데뷔하며 1집 앨범 타이틀곡 ‘와’를 통해 동양적 부채춤, 손가락 마이크 등 직접 구상한 파격을 선보이며 테크노 열풍을 일으켰던 것도 배우로서 고민이 먼저였다. “가수를 욕심냈다기보다 ‘꽃잎’ 이후 제가 성장도 덜하고 애매한 나이여서 역할이 안 들어왔어요. 음악도 좋아하고 가수 하면 성인 된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으니까 했는데 오히려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역효과였죠. 중국‧일본보다 한국에서 영화를 더 못 찍어서 안타까웠죠.”

가수도, 한류스타도 생명이 오래지 않았다. “최고였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는데 다시 올라가서 잘할 수 있어, 했는데 또 내려가고.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20대 후반부터 내려놓는 법을 배웠죠. 일이 주어지면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고, 마음의 정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정현이 '반도'에 앞서 가수로서 좀비 설정을 먼저 활용한 2013년 곡 '브이' 쇼케이스 무대다. [중앙포토]

이정현이 '반도'에 앞서 가수로서 좀비 설정을 먼저 활용한 2013년 곡 '브이' 쇼케이스 무대다. [중앙포토]

"'편스토랑' 주목 의외…요리는 해방구"

그런 부침이 전화위복이 됐다. 스트레스를 다스리려 시작한 요리가 최근 TV 예능 ‘신상출시-편스토랑’(KBS2), 요리책(『이정현의 집밥 레스토랑』) 등으로 주목받으면서 그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엄마가 요리를 좋아하셔서 집에 오면 양푼에 밥 비벼 먹으며 엄마 밥에 위안 얻고 엄마랑 매주 ‘한국인의 밥상’ 보는 게 낙이었거든요. 그런데 ‘편스토랑’ 본 분들은 제가 집안일 하는 것에 놀라더라고요.”(웃음)

지난해 결혼한 후엔 더욱 안정감을 찾은 그다. “계속 연기하고 영화 많이 찍고 싶고 아기도 빨리 갖고 싶고 부모님도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배우로서 행보에 대해선 “아무 기대하지 말라” 부탁했다. “‘반도’도 코로나 시국이라 너무 걱정했는데 기대감을 낮추니까 조금만 좋은 일 있어도 더 감사한 것 같아요. 4D로 본 관객들이 진짜 좋아하시더군요. 좋은 추억 되는 재밌는 오락영화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16일 만난 이정현은 "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편해졌다. 더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사진 NEW]

16일 만난 이정현은 "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편해졌다. 더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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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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