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70년 인술 마감하는 문창모 박사

중앙일보

입력

"죽는 날까지 환자를 돌보고 싶었는데…"

강원도 원주 문이비인후과 원장 문창모(文昌模.94)박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26일 흰 가운을 벗었다.

193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뒤 의사의 길을 걸어온 文박사가 70년 펴온 인술(仁術)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든 탓에 면봉을 잡은 손놀림이 둔해져 자칫 실수를 할지 몰라 걱정이 되는 데다 자식들도 권해 진료를 그만두게 됐다" 고 말했다.

文박사는 그러나 일부러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에 한해서는 이달말까지 정성껏 진료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평북 선천 출신으로 의료계와 교육.정치.종교 등의 분야에서 두루 존경받아온 그는 58년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원주연합기독병원을 세워 초대 원장을 맡았다.

그 이후 43년 간 원주에서만 진료에 헌신해 왔다.

文박사는 나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 분야에도 기여했다.

현대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과 친교가 두터웠던 文박사는 92년 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14대 국회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생전에 '1백살까지 함께 일하자' 고 약속했는데 별세했고 나도 천직을 접게 돼 섭섭하다" 며 "남은 생 동안 신앙 생활에 충실하겠다" 고 말했다.

그는 64년 원주에서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한 이후 매일 아침 여섯시부터 밤늦게까지 병원 문을 닫지 않았다. 학생 또는 직장인들이 진료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새벽 진료 후 국회에 출근했으며 지난해 의약분업 때도 병원을 지켰다.

96년에는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후회없는 삶' 이라는 서문에서 그는 "의사가 된 지 66년, 나이가 아흔이 된 지금도 나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8~9시까지 일한다. 나는 별무취미로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진료생활을 축복이라고 여긴다" 고 밝혔다.

文박사는 31일 오후 5시 가족과 함께 조촐한 폐업예배를 갖는다. 원주기독병원은 시민들과 함께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4월 중순께 은퇴식을 마련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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