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5명 떠났는데 출근 독촉"…용인 창고 화재 근무자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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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도 용인 양지면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21일 경기도 용인 양지면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3년 넘게 매일 얼굴 보며 일하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었는데 너무합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먹거렸다. A씨는 지난 21일 용인 SLC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동료 5명을 떠나보냈다. SLC 물류센터에는 오뚜기물류서비스 등이 입점해 있다.

오뚜기물류서비스에서 상·하차 업무를 해온 A씨는 “이번 사고에서 변을 당한 오뚜기물류서비스 소속 B씨(33)는 우리 같은 비정규직을 많이 배려해줘서 직원들이 잘 따랐었는데 안타깝다”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는 “센터는 불에 탔고 동료도 잃어 삼일장만이라도 회사 차원에서 치렀으면 했다. 그런데 사고 다음 날부터 당장 용인 내 다른 센터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사상자 13명이 나온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데, 회사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출근부터 독촉했다고 꼬집었다. A씨는 “소중한 우리 동료들 목숨보다 회사가 중요하다는 건지 회의감이 든다”며 “트라우마로 다들 힘들어하는데 너무한 처사 같다”고 말했다. 오뚜기물류서비스 측은 “관련 사항을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24일 용인시 등에 따르면 전날 유가족 측은 오뚜기물류서비스와 협의를 마치고 합동분향소를 차리지 않기로 협의했다. 시신이 있는 병원마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1일 오전 8시 29분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소재 지상 4층, 지하 5층 규모 SLC 물류센터에서 발생했다. 불길은 2시간 만인 오전 10시 30분쯤 잡혔다. 하지만 소방당국의 인명검색 작업에서 근로자 5명이 지하 4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상 1명, 경상 7명 등 부상자도 나왔다. 경찰은 해당 건물 지하 4층 냉동창고 구석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물류센터 관련 업체 4곳을 지난 22일 압수수색했다. 센터 운영 및 시설관리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자료를 통해 평소 센터 운영이나 시설관리 과정에서 안전 조치가 소홀히 이뤄진 부분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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