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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탈홍콩 유치’ 혈안인데···韓은 국책銀 지방 이전 검토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정부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도쿄, 싱가포르 등 각국이 ‘포스트 홍콩’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 한국만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회사가 밀집한 홍콩 도심의 풍경. 연합뉴스

금융회사가 밀집한 홍콩 도심의 풍경. 연합뉴스

대통령에 국책은행 이전 방안 보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부터 ‘지역 혁신 생태계 구축 방안’에 대해 보고받았다. 보고 내용에는 국책은행 등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안이 포함됐다.

이전 대상으로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이 꼽힌다. 김사열 국토균형발전위원장은 “국책은행도 이전 대상이긴 하지만 실제 이전할 지는 아직 결정 안 됐다”며 “이번 보고에서는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큰 청사진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지, 국책은행 이전에 대한 이런저런 결정이 오간 건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 균형 발전’의 명목으로 국책은행 이전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20대 국회 때도 산업은행의 본점을 부산, 전라북도로 옮기는 개정안이 각각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여당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데다,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을 만회하기 위해 금융기관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에 앞서 외부 참석자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을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에 앞서 외부 참석자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을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정부 때도 국책은행은 서울에 뒀는데… 

전문가들은 국책은행 이전에 대해 “실익이 적다”는 입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은 경제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만큼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금융 산업의 활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며 “금융기관들에의 핵심 인력들이 이탈할 경우 국책은행들의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중심지 정책과도 충돌이 불가피하다. 금융산업은 정책당국, 금융회사, 투자자, 법률전문가, 투자대상 등 인·물적 네트워크 집적이 핵심 경쟁력이다. 국책 금융 기관이 이전될 경우 정부가 금융중심지로 지정한 서울의 금융경쟁력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1차 공공기관 이전 때도 동북아 금융중심지 육성을 위해 국책은행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 교수는 “금융산업은 시너지 효과가 중요한 만큼, 어느 나라든 가장 큰 도시에 금융중심지가 형성돼 있다”며 “한국이 글로벌 금융허브를 추진한다며 인위적으로 금융기관을 쪼개 놓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금융중심지 정책 완전히 포기했냐" 

이전 대상이 된 국책은행은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산은·기은·수출입은행 노조와 함께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금융노조는 24일 중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국책은행 이전에 대한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보낸다. 해당 서한에는 “투자자금이 홍콩에서 이탈하고 있는 헥시트(HEXIT) 국면에서 수도 서울조차 홍콩 대체지로 부상하지 못해 도쿄·싱가포르에 빼앗기고 있는데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고집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중심지 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책은행 이전 등에 관해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정부 차원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검토된 적은 없다”며 “향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필요성이 제기되면 다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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