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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대신 한국 올래? 외국 금융사 다 NO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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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홍콩 금융가의 자금과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고층 건물이 늘어서 있는 홍콩 금융가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홍콩 금융가의 자금과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고층 건물이 늘어서 있는 홍콩 금융가 . [로이터=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국내에서 진출한 외국계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비공개 수요 조사를 했다. 홍콩 사태의 장기화로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을 다시 추진할 기회로 봐서다. 하지만 정부는 계획을 접기로 했다. 수요 조사에 응한 외국계 금융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주52시간 근무제를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일본·싱가포르에 밀리는 금융허브 꿈 #서울 금융경쟁력 3년째 30위권 밖 #정치권은 국책기관 나눠먹기 몰두 #‘홍콩 엑시트’에도 기회 못 살려 #“규제 혁신없인 금융허브 언감생심”

일본 여당인 자유민주당의 경제성장전략본부는 지난 22일 정부에 보내는 정책 건의사항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기반으로 ‘금융도시 도쿄’를 실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민당은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비자 요건을 완화하며 ▶금융그룹의 자회사 설립 규제를 재검토하는 방안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도쿄를 금융 측면에서 매력적인 비즈니스의 장소로 이어가려면 인재·정보·자금이 모이는 국제도시로서 계속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아시아의 금융센터로서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홍콩 금융가에서 자금과 인력이 이탈하는 ‘헥시트’ 현상도 나타난다. 헥시트는 홍콩과 이탈(Exit)을 합친 말이다. 홍콩 일간지 명보에 따르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2%가 “해외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자금과 인력을 유치하려는 각국의 경쟁도 치열해진다. 일본은 정부와 여당이 한 팀이 돼 움직이고 있고 싱가포르는 홍콩 자금의 유입으로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홍콩 사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약 40억 달러의 홍콩 자금이 싱가포르로 옮겨간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한국은 일찌감치 경쟁에 밀려나 ‘외톨이’ 같은 신세가 되고 있다.

떨어지는 서울 경쟁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떨어지는 서울 경쟁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국 컨설팅업체 지엔과 중국 종합개발연구원(CDI)이 지난 3월 공동으로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홍콩의 순위는 6위였다. 지난해 9월과 비교하면 세 계단 내려앉았다. 대신 도쿄는 세 계단 뛰어오른 3위를 차지했다. 중국 상하이는 4위, 싱가포르는 5위에 올랐다. 서울은 경쟁 도시보다 한참 뒤처진 33위, 부산은 51위에 그쳤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외국 금융회사에 한국은 당국이 너무 많은 규제와 간섭을 하는 국가로 인식돼 있다”며 “혁신적인 규제 완화 없이는 금융중심지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인 2008년 2월부터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 법에 따라 2008년 8월 제1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세웠고 2009년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갈수록 경쟁 도시에 뒤처지고 있다. 2015년 6위였던 서울의 GFCI 순위는 2018년부터 3년 연속 30위권 밖으로 밀렸다.

금융규제 개혁 논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국책 금융기관 나눠 먹기에만 관심을 보인다. 전북 전주 출신 의원들은 전주를 서울·부산에 이은 제3 금융중심지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반면 부산 출신 의원들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20대 국회 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태규(국민의당) 의원은 “일부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도로를 놓는 수준으로 금융기관을 끌어올 생각만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한 관계자는 “인천 송도 등에 금융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어 홍콩의 금융사들을 유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최운열 전 의원은 “금융뿐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금융중심지로 나가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안효성·조현숙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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