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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자형 침체' 우려에도 넘치는 돈에 주식ㆍ채권ㆍ금까지 고공행진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세계 경제는 뒷걸음질 중이다.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자산 시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딴 판이다. 위기 때 돈이 몰리는 금ㆍ은 등 안전자산은 물론이고, 경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주식ㆍ회사채까지 가격이 오르고 있다.

미국 증시 5개월만에 최고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증시 5개월만에 최고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다우지수는 22일(현지시간) 27005.84에 장을 마감했다. 5개월 만에 최고치다. 올해 최저점을 찍었던 3월 23일(18591.93)보다 45.25%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기업의 주가가 20년 만에 가장 비싼 수준”이라고 보도할 정도다. 중국과 한국의 증시도 경기와 무관하게 순항하고 있다.

달아오르는 곳은 주식시장만이 아니다. 금과 은값도 모두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8월물 금값도 트라이온스(31.1g)당 1870.18달러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23일까지 23.26%나 오르며 사상 최고치(온스당 1912달러)에 근접 중이다.

9년만에 최고치까지 오른 금값.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9년만에 최고치까지 오른 금값.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은값도 강세다. 이날 은값은 4년 만에 가장 높은 트로이온스당 22.68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27%나 넘게 몸값이 뛰었다. 경기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구리 가격도 2년여 만에 가장 비싸졌고, 국제 유가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채권값도 오르고 있다(채권 금리 하락). 22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0.597%를 기록했다. 올해 초 1.8771%에서 3분의 1 넘게 떨어진 것이다. FX스트리트는 23일 “미 10년물 국채 실질 금리가 -0.88%까지 떨어졌다”며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회사채 금리도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내려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투자등급 채권 금리가 지난 16일 2% 아래로 떨어졌다. 블룸버그 바클레이스 데이터 48년 역사상 처음이다.

경기 침체기에 금이나 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오래된 패턴이다. 경기가 꺼지면 안전 자산으로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미 국채 금리가 떨어지는 것(채권값 상승)도 비슷한 흐름이다. 하지만 경기 흐름에 비춰볼 때 주식 시장이 활황을 이어가고, 회사채 가격이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요 몰리며 뚝 떨어진 국채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요 몰리며 뚝 떨어진 국채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통적 경제 이론과 상식을 거스른 자산 시장의 활황은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의 힘이다. 코로나 19로 주저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재정과 통화 정책을 총동원해 막대한 돈을 풀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직접 나서서 지난 3월부터 국채와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7500억 유로(약 1032조원)의 기금 집행에 합의했다. 미국은 추가 부양책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각국이 풀어댄 돈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현금이나 요구불예금, 각종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량인 M2가 크게 늘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과 유럽ㆍ일본의 M2는 4620조엔(약 5경1637조원)으로 1년 전보다 550조엔이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M2도 한 달 만에 35조4000억원 늘며 통계 편제 이후 월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넘치는 유동성은 경기에 대한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 등이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이먼은 “경기 침체기인데 각종 정부 부양책으로 인해 충격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어두운 경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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