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만 위험한가" 코로나 표적단속에 뿔난 '日 물장사 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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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대 방지 대책으로 유흥주점 등 이른바 ‘밤의 유흥가’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이자 업계가 공개 반발하고 나섰다.

신주쿠 등 '밤의 유흥가' 경찰 단속 #'일본 물장사 협회' 공개 기자회견 #"'밤거리' 한데 묶어 비판하지 말라"

21일 NHK에 따르면 ‘일본 물장사(水商売)협회’는 전날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밤거리’라고 한데 묶어 비판하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질적인 해결로 눈을 돌리기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물장사협회’는 캬바쿠라(キャバクラ·캬바레식 클럽) 등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단체다.

지난 20일 일본물장사협회 고가 가오리 대표가 '밤의 유흥가'를 표적으로 정부가 집중 단속을 벌이는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튜브 일본외국특파원협회 캡쳐]

지난 20일 일본물장사협회 고가 가오리 대표가 '밤의 유흥가'를 표적으로 정부가 집중 단속을 벌이는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튜브 일본외국특파원협회 캡쳐]

이 협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고가 가오리(甲賀香織)는 “밤거리에서 감염자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다대한 폐를 끼치고 있는 데 대해 업계를 대표해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따라서 감염대책에 크게 차이가 있다”며 “‘밤거리’나 ‘호스트’ 등으로 한데 묶어서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나 도쿄도가 ‘밤거리’를 나쁜 놈으로 몰고 분단을 조장할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25일 긴급사태선언을 해제함과 동시에 호스트 클럽(남성 접객원이 주로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술을 제공하는 방식의 유흥주점), 캬바쿠라 등 이른바 ‘밤의 유흥가’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집중적으로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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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가 지정한 밀접 접촉자나 유증상자가 아니고는 검사를 해주지 않는 정부 방침과는 달리, 이들 ‘밤의 유흥가’ 종업원에 대해서는 밀접 접촉 여부와 상관없이 무증상자도 전원 검사를 했다.

그 결과 5월 26일부터 7월 19일까지 ‘밤의 유흥가’에서 총 1246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인됐고,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발생한 감염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거리에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거리에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부는 ‘밤의 유흥가’를 아예 감염 확산의 진앙지로 단정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 않자 기존의 보건소 인력뿐 아니라 경찰력을 동원해 ‘밤의 유흥가’에 대한 단속을 더 강화하기로 했다.

풍속영업법을 어기고 시간 외 영업을 하거나 당국에 신고한 것과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가 만연한 장소는 한정돼있다”면서 “법령 의무를 철저히 해줄 것을 감염방지 대책과 함께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밤의 유흥가’ 측에서는 불만이 치솟고 있다. 호스트 클럽 16곳을 운영하는 데쓰카 마키(手塚マキ)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호스트 클럽이 검사를 적극적으로 받은 결과, 감염자 수가 늘고 있는 것”이라면서 “호스트만 나쁘다는 식으로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4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신주쿠 가부키초에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4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신주쿠 가부키초에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가 대표도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실상과 동떨어져 있으며,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이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는 구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업계에는 싱글 마더가 많고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도 하고 있는데 이대로는 전국의 100만명 이상의 종업원 중 일부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밤의 유흥가’만 콕 집어 단속을 벌이는 데 대해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호스트 클럽은 나쁘고 일반 술집에선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는 거냐”, “낮의 거리는 안전하고 밤의 거리만 위험한 건가”라는 등의 의문이다.

도쿄신문은 “애초에 풍속영업법에는 코로나19 대책 시행 여부를 단속할 권한이 없다. 경찰의 위압으로 휴업시키려는 노림수가 역력하다”고 분석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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