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조롱받은 '금부분리'···秋 뒤엔 '헨리조지포럼'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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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은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은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20일 집계해보니 이달 들어 추 장관은 페이스북에 총 22개의 글을 올렸다. 하루 1개꼴이다. 추 장관은 6월에는 21개, 5월 10개, 1~4월에는 1~4개의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는 횟수가 늘어난 것뿐 아니라 그 주제도 검찰개혁과 법무부 정책 홍보에서 최근에는 부동산 이슈, 본인과 관련된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과 해명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관의 페이스북에 법무부는 일체 관여하는 바가 없다"며 "장관이 정말 직접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집안일(법무부)부터 챙기라", "서울시장, 대권을 위한 정치적 입지 넓히기 행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추미애 페이스북 캡처]

[추미애 페이스북 캡처]

최근 추 장관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중 단연 눈에 띄는 글은 '금부분리' 제안이다. 추 장관의 설명대로 '금부분리'는 공식적인 경제학 용어는 아니다.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하는,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자는 취지의 정책을 펼쳐야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추 장관 제안의 자문 그룹은 대구지역 김윤상 전 경북대 석좌교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주축인 '헨리 조지 포럼'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7년 10월 9일 '토지 공개념'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 사상가 헨리 조지를 인용하며 "헨리 조지는 (토지에) 세금을 매겨서 (토지 보유자들이) 땅을 팔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며 "헨리 조지가 살아 있었다면 땅의 사용권은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식이 타당하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한 달 뒤 추 장관은 '헨리 조지 포럼'과 공동으로 '헨리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를 열었다.

김윤상 "주택 빼고 토지 불로소득을 없애면 대출은 괜찮아" 

김윤상 전 경북대 석좌교수

김윤상 전 경북대 석좌교수

헨리 조지 포럼의 좌장인 김윤상 전 석좌교수에게 ‘금부분리’ 이론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생소하다. 금부분리가 뭔가.
『땅과 집값의 경제학』(추 장관이 페이스북에 일독을 권한 책)을 보면 금융이 부동산, 특히 주택을 담보로 굉장히 성장해 부동산 경기에 따라 금융까지도 망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과 금융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렇다. 그 책에도 금융이 없으면 집을 사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한다. 다만 하나의 주택이 있으면 감가상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건축물과 불로소득의 대상이 되는 토지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금부분리에서 부동산은 토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토지에서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면 대출은 해도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자는 것인가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은 양도차익이 아니라 지대(토지 소유자가 그 토지의 사용자로부터 징수하는 대가)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주택에서 1억원에 대한 이자만 제외하고 그 이상 지대가 오르면 그걸 다 세금으로 걷으면 된다. 그게 보유세다. 토지에서 이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1억원으로 고정이 된다. 이렇게 되면 즉시 투기가 없어지고 사회에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게 된다. ‘이자공제형 지대세’ 라고도 말한다.
가능한가
19세기 헨리 조지는 (이자 비용 포함) 지대를 몽땅 걷자고 했다. 그러면 주택 매매가격은 ‘제로’가 된다. 당시 미국은 땅을 공짜로 취할 때라 그런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 이를 직접 대입하면 큰일 난다. 금융기관과 가계 모두 도산할 것이다. 그래서 이자를 빼 매매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추 장관에게 자문을 한 건가
장관이 되기 전 지난해 여름 우리와 세미나를 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금융을 그대로 놔두면 큰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최근에 자문한 건 아니다.  

주류·진보 경제학자 "현실적으로 구현 불가능"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연합뉴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과 심지어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도 이는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먼저 "추 장관이 법만 아는 게 아니고 경제도 잘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잘난 척"이라고 일갈했다. 금부분리론에 대해서는 "금융을 정말 모르는 이야기"라며 "금융이 뭐는 해도 되고, 뭐는 하지 말라는 생각은 헌법적으로 자유자본주의에서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지이즘(헨리조지의 이론)'은 토지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전부 정부가 뺏어야 한다는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은 가계에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요즘 세대에게 대출을 하지 않고 자산을 형성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수요·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부동산을 제공하고 대출을 받아 주택을 안정적으로 장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진보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는 "금융과 부동산 분리를 구현할 정책수단은 아예 없다"며 "금융과 부동산의 분리가 아니라 사모펀드와 부동산의 분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런 형태라면 일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광우·김수민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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